본향에 돌아오니

가톨릭부산 2015.10.07 06:15 조회 수 : 42

호수 2007호 2009.08.16 
글쓴이 신홍윤 에몬 


흔히 제 삶을 소설같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남매가 다섯, 여섯 살 때부터 편부로서 아이들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서 아이들은 정서 불안과 절대 고독에서 오는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메마른 남매의 감성을 어떤 방법으로 일깨워줄까 고민하다 피아노와 태권도를 배우게 했지요. 하지만 학원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결석이 잦고 여느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으로 당시 동항성당의 오수영 신부님을 찾아뵙고 편부 슬하에서도 해맑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일러 달라 했더니 웬만한 잘못은 너그럽게 포용하고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듬어 주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투박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버리고 대화와 스킨십을 많이 하였더니 남매에게서 차츰 그늘이 사라지고 대학 진학을 할 때까지 대나무처럼 곧게 성장하면서 속을 썩이거나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답니다.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오붓함 속에서 작은 행복감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군복무를 끝내고 딸애가 대학 3학년일 때 우리 가정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조카에게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은행 독촉에 수없이 시달리다 월급과 퇴직금이 압류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부산광역시 자원 봉사 센터’ 소속으로 15년 동안 봉사단을 이끌며 받은 대통령 표창 등이 참작되어 천만 원의 탕감을 받았습니다. 아쉽게나마 일은 해결되었지만 심적 고통의 후유증으로 우울증 초기 증상이 왔습니다. 하여 약 1년 동안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냉담도 하게 되었고요… 게다가 집안 형편을 눈치챈 아들은 “아버지, 제 힘으로 벌어 남은 2년을 채우겠습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가출하였습니다. 아들이 남긴 쪽지를 읽으며 한없이 울었고 그때부터 정신을 차려 주민센터를 찾아가 부탁한 끝에 지금까지 복지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성화에 1년쯤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는 귓가에서만 맴돌고 눈앞에는 자꾸 성스럽고 경건한 미사가 눈에 아롱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마주친 한 자매님이 마음을 돌리라며 한참을 설득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다음 주일부터 갈게요”라고 말하고는 성당에 다시 발을 내딛었습니다. 성전을 들어서는 순간 전혀 낯설지 않고 본향에 온 듯 포근함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남모르게 눈물을 훔쳤습니다. 이제 다시 이 그리웠던 본향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난 잠시 나그네의 신세로 객지를 떠돌다 마음 속에 간직했던 참 고향을 찾았습니다.
 

 ((성요한성당))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29 2012호 2009.09.17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정현주  148
28 2010호 2009.09.06  독감바이러스의 변종, 신종인플루엔자 바로 알자 주보 편집실  48
27 2008호 2009.08.23  자원 봉사 이제는 전문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사회사목국  26
» 2007호 2009.08.16  본향에 돌아오니 신홍윤 에몬  42
25 2004호 2009.08.02  올해 여름휴가는? 임석수 신부  113
24 2003호 2009.07.26  청소년 신앙축제 청소년사목국  85
23 2002호 2009.07.19  여름 휴가, 어디로 가세요? 주보편집실  232
22 1999호 2009.06.28  바오로 해 폐막에 즈음하여 선교사목국  53
21 1998호 2009.06.21  2009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요약) 김운회 주교  148
20 1996호 2009.06.14  민족화해위원회를 소개합니다. 정호 신부  82
19 1995호 2009.05.31  故 김수환 추기경님 추모 음악회를 개최하며 임석수 신부  106
18 1993호 2009.05.17  선교는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의 나눔이다 전동기 신부  106
17 1991호 2009.05.03  제46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문(요약) 주보편집실  40
16 1989호 2009.04.19  물은 우리의 '생명수' 박용수 요셉  35
15 1987호 2009.04.05  대학 캠퍼스 신앙의 요람인 가톨릭 학생회 강헌철 신부  96
14 1986호 2009.03.29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부현 바오로 교수  100
13 1985호 2009.03.22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메리놀병원 원목실  75
12 1983호 2009.03.08  하늘이 내려 주신 동아줄 이경자 크리스티나  38
11 1982호 2009.03.01  가톨릭센터를 아시지요 임석수 신부  155
10 1981호 2009.02.22  김수환 추기경 선종 특집 file 주보편집실  14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