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206호 2013.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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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기도를 하면 분심에 시달리거나 심지어는 나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분심이나 나쁜 생각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가요?
권순호 신부(남산성당 부주임) albkw93@hotmail.com
오랫동안 기도와 수행에 전념했던 사막의 교부들 중에 요한 카시안은 분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방앗간 주인은 밀이나 가라지 등 빻을 내용물을 바꿀 수 있지만 풍차가 도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듯이, 우리의 머리도 끊임없이 생각들을 소유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분심을 완전히 조절하고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죄를 짓게 하는 악마는 대부분 우리의 분심의 틈을 타 나쁜 생각을 통해서 들어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 기도할 때뿐 아니라 일상 속에도 분심과 나쁜 생각으로 헤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침에 문득 든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 어떤 일에 대한 걱정, 잘못된 욕구가 온종일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경험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악마의 유혹에 너무나 나약하여 분심 중에 나쁜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어쩌면 기도는 먼저 분심 중에 나쁜 생각으로 쉽게 점령되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 26) 이미 일어난 나쁜 생각을 키우지 않고, 쫓아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가능합니다. 기도는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온 악령을 몰아내기 위해 항상 깨어서 겸손되이 성령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