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축제가 점점 시들해지고, 다시금 일상으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끝부분에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증인이라 어떤 사람입니까? 증인을 희랍어로 마르튀리아(marturia)라고 합니다. 이 말은 증거자, 보고 듣거나 경험한 것, 혹은 신적 계시나 영감으로 안 바를 확증하는 사람입니다. 후에 이 말이 그리스도교 용어로 채택되면서 그 의미가 본질적으로 변화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언어를 통하여 증거하고, 자신의 언어가 진리이기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 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말로 하면 증인이 바로 순교자입니다. 박해 이후에는 피흘림의 순교 대신 복음의 삶을 철저히 사는 이들을 영적 순교자로 불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자는 증인이며 동시에 순교자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체험한 자와 체험하지 못한 자의 삶을 베드로 사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지 못했을 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수난에 동참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체험한 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1독서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약하고 비겁했던 그가 예루살렘 대성전에서 두려움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예고대로 예수님의 부활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후 어떠한 위험이나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세상 곳곳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통한 증거가 진리였기에 피를 흘리는 순교까지 했던 것입니다.
2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으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지 않으면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 축제때 기쁨의 큰 소리로 외쳤던 ‘알렐루야’가 성당 안에서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로 쉼없이 울려퍼져야 합니다. 200여년 전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에서, 체포되어 견디기 힘든 고문과 형벌 속에서도, 심지어는 형장에 끌러가 순교하기 직전에도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양재현 순교자)라는 신앙고백을 우리도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체험한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