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 14∼15) 민수기 21장을 보면, 오랜 광야생활에 지쳐 하느님께 불만을 터뜨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을 보내어 벌을 내리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고 쳐다보는 사람은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러하셨듯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구리 뱀을 쳐다보며 죽음의 문턱에서 새 삶을 갈구하는 것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사람은 단순한 생명의 연장을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그저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완성되어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신앙의 위기를 함께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좌절될 때 인간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느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보다는 내게 편리해 보이는 부분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나와 가족과 이웃에게 불행이 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러하셨듯이 끊임없이 구원의 손길을 뻗으시어, 세상을 단죄하시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외아들의 고통을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올리브 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지금 겪는 고통의 자리가 구원과 영광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볼 때마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 죽음의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원의 희망을 되새겨 나가는 것이 사순절의 의미일 것입니다. 벌써 사순절도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요한 3, 16)과 그의 외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며, 끊임없는 사랑과 희망을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 오늘 사순절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