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부산 2015.10.07 05:46 조회 수 : 71

호수 1975호 2009.01.11 
글쓴이 방삼민 신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갔을 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을 보았다. 흰옷을 입고 강에 들어가 온 몸을 물 속에 푹 담그고 나와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그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세례가 단지 물로 씻는 일만이 아니라 그 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죄를 씻고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세례 때를 기억해 보자. 우리 교회에서는 온 몸을 물에 담그는 대신 이마만을 물로 씻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 6개월간의 교리기간, 시간에 쫓겨 놓치기도 하고 피곤하여 졸리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세례’를 위한 일념으로 열심히 출석했던 그때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다시 태어나던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늘은 주님이 세례 받으신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죄 없으신 주님이 왜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 예수님의 세례는 죄를 씻기 위한 의식이라기보다는 온 세상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이시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받고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당신의 생명을 실천하는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예식인 셈이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음성이 들린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명과 신분을 천명하는 하늘의 증언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일생을 하느님의 아들답게 사셨다. 그리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하는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부여받게 되었다. 세례 받던 날 그 깊은 뜻도 모르고 다소 흥분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신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 날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은총의 순간이었던가!

지금 우리의 신자 생활은 어떤가? 죄를 씻고 새로 태어난 세례의 기쁨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온 몸을 담그지 않고 머리만 씻어서인지 생각 따로 몸 따로의 신자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퇴색된 거울처럼 세월이 갈수록 처음의 그 마음을 잊고 산다면 세례 때 받았던 새 생명의 은총도 그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주님의 세례 축일을 맞이하면서 요르단 강에 온 몸을 담그고 나와 서로 기뻐하며 얼싸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과 세례 받던 날 이마에 물 붓고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97호 2025. 11. 9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file 최정훈 신부 
2896호 2025. 11. 2  우리의 영광은 자비에 달려있습니다 file 염철호 신부 
2895호 2025. 10. 26  분심 좀 들면 어떤가요. file 최병권 신부 
2894호 2025. 10. 19  전교, 복음의 사랑으로 file 김종남 신부 
2893호 2025. 10. 12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 file 한종민 신부 
2892호 2025. 10. 6  복음의 보름달 file 김기영 신부 
2891호 2025. 10. 5  느그 묵주 가져왔나? file 김기영 신부 
2890호 2025. 9. 28  대문 앞의 라자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file 정창식 신부 
2889호 2025. 9. 21  신적 생명에 참여하는 삶 file 조성문 신부 
2888호 2025. 9. 14  나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삶 file 박재범 신부 
2887호 2025. 9. 7  더 크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file 이재원 신부 
2886호 2025. 8. 31  행복을 선택하는 삶 file 박호준 신부 
2885호 2025. 8. 24  ‘좁은 문’ file 이영훈 신부 
2884호 2025. 8. 17  사랑의 불, 진리의 불 file 이영창 신부 
2883호 2025. 8. 15  마리아의 노래-신앙인의 노래! 김대성 신부 
2882호 2025. 8. 10  그리움, 기다림, 그리고 깨어있는 행복! file 김대성 신부 
2881호 2025. 8. 3  “만족하십시오.” file 이재혁 신부 
2880호 2025. 7. 27  “노인(老人)=성인(聖人)” file 정호 신부 
2879호 2025. 7. 20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file 이균태 신부 
2878호 2025. 7. 13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file 계만수 신부 
주보표지 강론 누룩 교구소식 한마음한몸 열두광주리 특집 알림 교회의언어 이달의도서 읽고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