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39호 2017.06.18 
글쓴이 염철호 신부 

레지오 중 묵주기도를 하는데, 기도문을 바꾸어도 괜찮다고 해서 기도문 중“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를“가시관 쓰신 예수님은 복되시나이다.”혹은“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복되시나이다.”등으로 바꿔 기도합니다. 괜찮을까요?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 28)라고 인사하고, 엘리사벳은 성모님께“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 42)라고 인사합니다. 성모송은 이 두 인사말을 빌어 하느님께 순명하신 성모님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분이라 인사드리고, 성모님의 순명 덕분에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노래하며, 우리 죄인을 위해서도 기도해달라고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이러한 성모송을 반복적으로 외며 그 인사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성모님께서 낳으신 당신 아드님의 신비, 곧 탄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부활과 영광을 묵상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이런 묵주기도를 공동으로 바치면서 성모송에 담긴 성경 구절을 마음대로 변형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구절에 담긴 의미를 바꾸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묵주 기도에서 성모송 대신“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같은 성경 구절을 외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에는 삼가자는 것입니다. 공동체 기도에 참여하는 몇몇 이들에게 분심 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10, 23∼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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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247호 2013.12.08  요즘에 남편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많이 힘듭니다. 남편 이름으로 미사를 봉헌하거나 남편에게 팔찌 묵주를 차게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권순호 신부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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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245호 2013.11.24  세례 성사 때에 세례명을 정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호성인께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장재봉 신부  122
89 2244호 2013.11.17  평일 미사에 자주 참여하는 편이지만,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미사예물은 봉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기도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지향으로 미사 예물을 봉헌한 사람과 예물을 봉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지향을 기도한 사람과는 미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은총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합니다. 홍성민 신부  103
88 2243호 2013.11.10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간식이 무엇이 나올까만 관심이 있지, 딱딱한 교리나 미사 참례에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 신앙 교육을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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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2240호 2013.10.20  주위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없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도는 왜 하고, 성당에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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