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904호 2025. 12. 25 
글쓴이 신호철 주교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요한 1,5ㄱ 참조)
 
총대리 신호철 비오 주교
 
   2025년 성탄, 우리 마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국제 정세는 요동치고, 전쟁과 테러, 난민 문제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유럽과 중동 곳곳의 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세계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제는 둔화하고, 기후 위기는 온 지구에 걱정과 고통을 더해갑니다. 그야말로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은’(이사 60,2ㄱ 참조) 시대입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밝지 않습니다. 사회 갈등과 정치 분열은 깊어지고, 세대 간 대립과 지역 간 균열도 심해졌습니다. 경제 불안은 가정의 삶을 어렵게 하고, 극심한 저출생과 고립-우울 문제는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합니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현실의 생존을 걱정하고, 노인은 빈곤과 돌봄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지역 부울경 역시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의 어려움, 공동체 유대 약화라는 공동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우리는,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이사 60,2ㄴ)는 예언을 믿으며 성탄을 맞이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하십니다. 성탄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어둠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권력과 안전이 보장된 궁전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자리인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서 함께 떨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걸으신다는 신비를 드러냅니다.
   요한 복음은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요한 1,4-5 참조)고 선언합니다. 정치와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에도 하느님은 우리 안에 오셨으며, 성탄의 빛은 그 하느님을 우리가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 때 비로소 퍼져나가 정의와 평화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 희망은 인간의 힘으로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성탄은 우리에게 ‘평화’의 사명을 줍니다. 이는 분열된 사회 속에서 화해의 다리를 놓는 사람, 극단 대신 대화를 선택하는 사람,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력하는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성체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그 사랑으로 가정과 본당, 직장에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넵시다. 참된 정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평화’로 인해 실현됩니다.
   또한 성탄은 우리에게 ‘가난한 구유’를 기억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구유는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청년 실업자, 돌봄이 필요한 노인, 병상에서 외롭게 지내는 이들의 자리입니다. 다가가고 돌보고 함께 머물 때 우리는 세상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며 그렇게 성탄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산교구의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의 주님은 지금의 국제적 혼란과 사회의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희망의 순례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우리는 이제 아기 예수님의 빛을 품고 세상 안에서 그 빛을 나누는 사람들이 됩시다.

   성탄의 은총으로 이 땅에 평화와 새 희망이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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