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의 가르침
원성현 스테파노
부곡성당 · 부산가톨릭대학교 미래설계융합학부 교수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느 12월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서울에 살았는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친척 집으로 가는 도중, 광화문 언저리에서 분명 군인은 아닌데 요상한 군인 복장을 한 남녀가 발 앞에 냄비를 놔두고 딸랑딸랑하며 종을 흔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어머니에게 무엇이냐 여쭤보니 구세군 자선냄비라고 대답해 주셨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구세군 자선냄비를 검색해서 자세한 정보를 바로 알아내겠지만 그때는 구세군이 뭔지, 자선냄비가 뭔지에 대해 추가적인 내용을 바로 알 수 없었고, 그냥 “저런 걸 구세군 자선냄비라고 하는구나.”하는 정도 생각할 뿐이었다. 구세군이 개신교의 감리회에서 분리된 하나의 종파이고, 그들은 기부금을 통해 자선 활동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으며, 본부인 구세군회관이 광화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였다.
한때, 인구 4만 명 정도 되는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3년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소도시민의 무료함을 달래 주고자 우리의 구청에 해당되는 커뮤니티센터가 주최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행사장에는 ‘Donation(기부)’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통을 볼 수 있었고, 통 안에 항상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필자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제적으로 빠듯한 타국 생활 때문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그 안에 단 1달러도 넣어 보지 못한 것은 솔직히 상당한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자선’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줌’이라고 한다. 돈 없이도 도울 수 있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경제적인 도움 없는 자선은 한계가 있음도 분명하다.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기부 문화가 확산되는 듯하고, 필자 또한 소액이지만 매월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기부금을 통한 자선의 대상도 국내뿐 아니라 국외, 특히 빈국(貧國)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국적, 인종, 성별을 떠나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임을 감안할 때 피를 나눈 형제자매를 돕듯이 누군가를 돕겠다는 자선의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대림 시기를 보내며 심신을 정결히 하고 얼마 후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가짐이 어떻든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겠지만 이번 한 주를 보내며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인류 구원’이라는 가장 큰 이유 외에 ‘사랑의 실천’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수님의 큰 가르침인 ‘사랑’은 ‘자선’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희망’과 ‘기쁨’을 강조하는 대림 3주를 ‘자선 주일’로 지내는 이유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주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라는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