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67호 2016.0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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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양희 레지나 |
아름다운 사람들
김양희 레지나 / 수필가 supil99@hanmail.net
내 유년의 기억은 원조 물자와 함께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네댓 살 무렵 집에는 주로 옷가지며 생필품 등을 동네 반장을 통해 배급받곤 했다. 한 번은 내가 받은 겨울용 청색 점퍼 주머니 안에 10불짜리 달러 8장이 들어 있은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이었으니 제일 반가운 건 역시 과자였다. 바삭한 샌드와 달콤한 초콜릿은 형제들의 다툼 일 순위였고, 단물이 다 빠진 추잉 껌을 벽에 붙여놓았다가 이튿날 다시 씹곤 하던 기억들. 전쟁국가의 상흔이 남긴 아픈 추억들이다.
우리 이웃에는 가끔씩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추운 겨울 새벽산행의 약수터에는 따끈한 차를 준비해 와서 언 손을 녹여주는 이가 있다. 그의 구수한 우엉차나 보이차는 언제나 빈손으로 산을 오르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하루를 여는 시간, 만나는 사람마다 푸근한 덕담과 미소를 보내는 그는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일을 함으로 해서 자신이 먼저 즐거워진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타는 햇살 아래서 거름 주고 물주며 정성으로 가꾼 배추를 가을 끝머리 김장 때는 한 고랑씩 필요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이가 있다. 그의 시선은 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를 향해 열려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랑으로 희사한 배추는 가난한 이의 요긴한 김장이 되고 양식이 된다. 그는 돌려받을 기약이 전혀 없는 선행을 남모르게 하건만 보는 이는 단 한 분,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이시다.
원조(援助)는 도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 해외 원조 주일을 맞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뜻에 담긴 고마움을 되새겨본다.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최재선 주교님께선 생전에 누차 해외 원조를 강조하시곤 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받은 외국의 도움을 이제는 되갚아야 하는 당연한 의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셨다. 남미 과테말라 천사의집, 멕시코 소년의집 등 열악한 삶의 현장에서 사제나 수도자들이 행하는 거룩한 소임들은 새삼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도 이제 받은 바를 나누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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