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김동섭 바오로
용호성당 · 시인
벌써 15년이 훌쩍 지났다. 본당 사목협의회에서 시설분과장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혼자 계시는 할머니 댁에 전등이 고장 났는데 수리해 줄 수 있느냐며 성당 사무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문자로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신지 급히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성당에 부탁해서 미안해하셨다. 오래된 주택이라 천장이 높아 전등 수리가 쉽지 않았지만, 새 전등으로 교체하고 나니 수리비로 2만원을 주시려는데 물론 받지는 않았다. 물 한 잔을 주시면서, 고장 난지가 벌써 5일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동안 촛불을 켜고 지내셨는데 촛불이 넘어져 바닥에 깔려 있던 이불 모서리가 까맣게 탄 자국을 보여주셨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이불에 불이 붙었더라면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차마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다.
나는 곧장 성당으로 달려가 주임신부님께 면담을 요청드렸다. 신부님께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드리며, 우리 성당에는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으니 성당 출입구에 ‘건의함’을 하나 만들어 전기나 수도 등을 무료로 수리해 주자고 건의했더니 신부님께서는 참 좋은 생각이라며 바로 시행하자고 하셨다.
교우분 중 싱크대 제작업체가 있어 건의함을 만들어 열쇠를 채우고 앞면에 메모지를 넣을 수 있는 작은 구멍과 “전기, 수도 등 무료로 수리해 드립니다. 이름과 세례명 주소, 전화번호와 고장 부분을 적어서 넣어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 두었다. 신부님께 말씀드려 주보에 홍보도 하였더니 매주 2-3건씩 메모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본당 회장님께서 전기재료 판매업을 하셔서 전등과 전기 부품은 무료로 제공해 주셨고, 수도꼭지나 기타 자재는 성당에서 지원을 받거나 내 주머니를 빌리기도 했다.
이렇게 소소하게 홀로 계시는 성당이나 마을 어르신들께 내가 가진 재능으로 봉사 한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고 봉사 횟수도 400여 회가 넘었다. 지금도 연락이 오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고, 수리를 마치고 돌아설 때면 내가 더 기쁘고 감사하다. 어떤 할머니는 “아들보다 낫다.”며 손을 잡고 눈물을 보이신 적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랑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사랑은 받을 때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줄 때가 더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함을 새삼 느낀다. 힘이 들 때는 기도로 충전하고, 풍요로울 때는 절제하며, 이기심보다 이타심을 앞세우는 삶이야 말로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내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없는지 둘러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찾아보고 용기를 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