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 · 언론인
96살의 마리아 할머니. 얼마 전 본당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 없는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 날, 할머니의 미소에는 아흔 인생을 감싸 안는 신앙의 순수함이 꼿꼿이 드러났습니다. 어르신 한 분의 연륜은 백과사전 한 권의 지혜라는데 90이 넘는 인생길의 마리아 할머니가 하느님 품을 찾아 온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했던가요. 마리아 할머니의 입교에는 본당 공동체의 갖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집으로 찾아가 곳곳에 기도문을 크게 써 놓고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대모님은 지금도 알뜰히 할머니를 보살핍니다. 구역분과, 선교분과 등 본당 공동체의 도움이 모여 신앙의 어린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본당이야말로 유아세례부터 장례 미사까지 신앙의 모든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본당의 그리스어 paroikia는 ‘함께 머물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본당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함께 지내며 하느님을 증거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의 근거지입니다. 또 교회와 사회가 만나는 사목의 제일선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자본과 경쟁의 논리로 운영되지만 본당 공동체는 사랑과 용서로 움직입니다. 세상이 각박하고 상처받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로와 배려로 뭉친 본당 공동체의 역할은 늘어납니다. “찬미 예수님!”이라는 인사에는 내 안의 계신 성령께서 상대방에 계신 성령께 인사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 옆의 교우야말로 성령의 일치를 이루는 신앙 여정의 동반자요 복음전파의 사명을 같이 하는 동지들입니다.
몇 해 전 코로나 때 우리는 성당의 문을 걸어 잠그는 유례없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진 세상에서 교회는 위로와 희망의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를 위해 청소년, 청년의 해를 선포하고 젊은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젊음은 세월이나 나이가 아니라 ‘나에 대한 강렬한 발견의 시간’을 특징으로 합니다. 성당 건물이야 세월의 흔적이 쌓이겠지만 본당 구성원들이 사랑의 성장을 꿈꾸는 열정과 희망으로 산다면 그 본당은 영원히 젊은 교회일 겁니다. 늙지 않는 사랑과 희망은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2027년 8월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전 세계 청년들에게 ‘세상을 이길 그리스도의 용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또 레오 교황 성하께서 한국을 방문해 8월의 크리스마스가 한 번 더 이 땅에 재현될 예정입니다. 열정적인 기도와 봉사로 이 대회를 준비하는 한국교회는 사랑의 성장이라는 젊음의 기회를 가졌으니 이 또한 지극한 은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