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가톨릭부산 2025.08.20 10:35 조회 수 : 11

호수 2885호 2025. 8. 24 
글쓴이 이영훈 신부 


‘좁은 문’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
선교사목국장


   “너랑 나는 똑같아! 너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필요 없으면 기계처럼 버릴 거야. 나도 목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필요 없으면 고기가 되겠지.”

   자신의 처지를 소와 비교하며 이 글을 쓴 이주노동자. 그가 받았을 비인간적 차별과 혐오의 고통이 차가운 비수가 되어 저를 찔렀습니다.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 안에는 인간을 ‘쓸모’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인간을 쓸모에 따라 폐기해 버리는 현대 사회를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님 시대에는 종말 때에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얼마인지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분께서 들으신 이 질문도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듯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구원을 갈망하지만 너무나 어렵고 힘든 그 과정 때문에 신앙적 걱정과 불안을 겪고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의 하소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선민의식과 우월감, 폐쇄성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마치 자신들만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교만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인간에 의한 것도, 수의 문제도 아닙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요한 14,2)

   예수님의 말씀처럼 구원 은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에 우리는 집중해야 합니다.

   “좁은 문”은 ‘십자가의 길’을 의미합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요한 15,13 참조), ‘가장 보잘것없는 이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들을 향한 연민과 배려’(마태 25,40 참조),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희생 없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공감과 배려,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온 당신의 친구들이 마침내 긴 여정을 마치고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느님의 자녀, 우리의 형제자매인 이주민과 무관심 속에서 소외받고 있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들을 참된 형제자매, 친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인간적인 시선과 등급 매기기, 심지어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러한 말씀이 즉시 들려올지 모릅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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