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로 전하는 사랑의 증표
박시현 가브리엘라
전포성당 ・ 『함께』 편집위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2003년 등단한 심순덕 시인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의 앞부분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이 한 구절 속에 담긴 모든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을 우리는 프란체스코 그라나치(Francesco Granacci, 1469-1543)의 붓끝에서 다시 만난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화가였던 그라나치가 그린 성모승천 작품들은 단순한 종교화를 넘어 모성애의 숭고함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라나치의 성모승천 연작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마리아가 토마스 사도에게 허리띠를 건네주는 장면이다. 전승의 내용을 보면 성모 마리아는 승천하시며 의심 많은 토마스에게 자신의 허리띠를 증표로 내려주셨다고 전해진다. 이 허리띠는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을 상징하는 성물이다.
허리띠는 여인의 몸을 감싸는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물건이다. 마리아가 이를 토마스에게 건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한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구처럼,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도메니코 기르란다이오의 제자였던 그라나치는 미켈란젤로와 평생 친구였다. 그의 화풍에는 스승의 섬세함과 친구의 웅장함이 어우러져 있다. 그라나치의 성모승천 작품에서 마리아는 고통 속에서도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는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어머니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림 속 허리띠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연결고리다. 승천하는 마리아와 땅에 남은 사도들 사이의 마지막 접점이다. 이는 모든 어머니가 자녀에게 남기는 사랑의 유산과도 같다. 어머니는 떠나면서도 끝없이 자녀를 돌보고 싶어 한다. 허리띠는 바로 그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려졌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단순히 마리아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사랑이 받을 최고의 영예이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겸손한 고백 속에 담긴 위대한 사랑이 하늘의 찬양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그라나치의 붓끝에서 피어나는 허리띠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죽음마저 초월한다고. 그 사랑은 하늘에서 땅으로, 영원에서 시간으로 이어지는 불멸의 끈이라고. 성모 승천 대축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가장 닮은 지상의 기적임을.
작품 설명 : https://www.youtube.com/watch?v=cd7CszHXs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