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우동성당·시인
단체 모임이 있는 날, 2025년의 일정을 세우고 한 해의 계획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각자의 달력에 붉은 글과 파란 줄을 그어가며 우리 모두 이번 문학기행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즐겁고 보람된 한 해를 만들자고 마음을 모은 날이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날이 되자 몇몇 분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갑작스레 몸이 아프신 분, 손녀를 돌봐야 해 집을 나설 수 없다는 분, 가족의 병환으로 집을 비울 수 없다는 분 그리고 마음이 편치 않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분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그 빈도와 깊이가 더 자주,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부터 세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다.
나에게도 경험한 것 중 잊혀지지 않는 예기치 않은 일들 중 두 가지를 만나본다.
첫번째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성당에서 새벽 미사 복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의 무릎엔 말라붙은 피가 남아 있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파트에서 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넘어졌다는 것이다 너무 아파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는데 그 순간, 하느님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하느님, 저 복사하러 가야 해요. 일어나게 해주세요.” 했더니 믿기지 않게도 벌떡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었다고 했다.
두번째는 내 신앙의 여정에서 마주한 일들이다. 고향을 떠나 먼 부산으로 시집오던 날부터 나의 삶은 늘 낯섦과 마주해야 했다. 정이 들만하면 이사를 했고 새로운 본당에 적응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도, 받기도 어려워졌고 늘 전학 온 학생 같았다. 기도는 점점 외롭고 낯선 것이 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기도를 하러 더 멀리 가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 둘 곳이 없으니 기도조차 떠돌게 된 걸까?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아시는 하느님은 오고 가는 먼 길도 안전한 삶을 살도록 지켜주시는 것 같았다.
이렇듯 예기치 않은 일들은 늘 우리 삶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이제 조금 건강하다고 느껴질 때 요즘 생활이 편안하다고 생각될 때 기도 생활을 준비한다. 본당 미사 전례를 따라 성가대의 찬송이 익숙해지고 내가 앉는 자리가 무언중에 정해진 듯 나의 기도가 깊어질 무렵에 신부님의 강론 중 ‘성경은 지혜문학이다.’라는 말씀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오늘도 예기치 않은 일을 준비하기 위해 성경 속에서 삶의 지혜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