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조정현 글리체리아
삼계성당
몇 년 전 부모교육 봉사자 모임에서 신부님께서 “아이를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하고 질문하신 적이 있었다. 나의 대답은 “십자가”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부부에게 두 아이를 맡기셨다. 언젠가 하느님께서 필요하신 곳에 이 아이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도록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부모로서의 희생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은총이 섞인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여느 가톨릭 신자들이 그러하듯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주일학교를 보내고, 첫영성체도 하고 복사단 활동도 하고 성당 안에서 그렇게 아이들은 자랐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었다.
첫째는 첫영성체 이후로 세상에서 미사가 제일 재미있고 복사 서는 게 삶의 즐거움인 아이가 되었다. 그 은총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춘기가 되면서 달라졌다. 많은 부모들이 겪는 것처럼 말수가 줄어들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건 기본이고, 신앙에 대해 반항을 시작하고, 하느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싶어서 가진 종교도 아닌데, 부모님의 종교를 내가 왜 따라야 하느냐? 정말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왜 전쟁이 일어나고, 착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이 생기느냐? 나는 이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당에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주일학교보다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이 즐거워졌고, 미사 시간이 행복하던 아이는 미사 참례를 위해 친구들과 놀다가 먼저 일어서는 것이 억울했다.
내가 그랬듯 자라면서 한 번씩 겪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온전히 의탁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속 둘째 아들이 돌아오듯 아이가 하느님을 분명 다시 찾을 것이니 기도하고 믿고 기다리라고 이야기해 주는 지인들도 있었고, 종교 선택에는 자유가 있으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올해부터 바뀐 입시제도 챙기고 성적 관리를 하라고 충고해 주는 지인도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 부부도 부모로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 아이가 사춘기가 처음이듯 우리도 사춘기 부모가 처음인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처럼 조금씩 나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