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5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에서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끌어 당기는 대목이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다.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보여주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냉대한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에 좌우된다면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씀을 팔아먹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면 도대체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마르코 복음 1,1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 구절은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시작”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복음이 은근히 많다. 수많은 복음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고, 그분의 삶과 그분의 가르침이, 그분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복음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든, 개신교 신도든 다 포함해서 그리스도교 신자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과 성경의 말씀들과 가르침들 중에 자기 입맛에 맞는 것, 자기 스타일에 부합하는 것만을 골라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아전인수다. 그뿐만 아니라, 냉담의 길을 걸어가거나 개종의 길을 과감하게 걸어가는 이들도 있다.
성당이나 예배당에 잘 나오다가, 열정이 식어서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상처를 받거나 주어서든, 성직자나 수도자, 혹은 사역자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 혹은 미움으로 말미암아 냉담을 하거나, 개종을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꽤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입으로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뜻은 모르겠고, 내 뜻이나 이루어지게 해주소서”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핵심은 내가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오히려 주님더러 나를 따르라고 하는 사람들이 결국 냉담의 길을 가거나, 개종의 길을 간다.
교무금도 꼬박꼬박 내고, 헌금도 넉넉히 하고, 십일조도 내고, 각종 예물도 잘 내고, 가끔씩이라도 성직자 수도자들, 사역자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드리고, 기도들, 미사들, 각종 신심행위들도 성실히 할 터이니, 엄청난 복덩어리까지는 별로 필요 없고, 그저 콩고물, 팥고물 정도의 은총 정도나 내려 주시면 된다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복의 마음이다.
적어도 천주교 신자든, 개신교 신도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자기 위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게 되면, 냉담의 길을 걷거나, 개종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고서는 실존적인 종교생활, 주체성있는 종교생활이라고 스스로를 대견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가톨릭교회는 지난 2천년 간 이러한 경우를 두고,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기 만족의 삶, 자기를 드높이고, 하느님을 낮추어보는 삶, 바로 교만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가 바빠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신앙생활 제대로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이 0순위가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 0순위는 자기자신이든, 아니면 자기의 가족이든, 하느님 아닌 존재가 0순위이고, 하느님은 그 다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간다. 간혹 고해성사 때에 그러한 자신을 두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때에는 하느님을 0순위로 모실 것처럼 생각도 하고, 말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 경우들이 더 많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리에 하느님 아닌 다른 것을 올려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적어도 이 평일미사에 오신 여러분들은 하느님이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0순위이기에, 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자신의 신앙고백의 시간이요, 장으로 여기기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앙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하느님이 나를 받아들이라고 하느님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하느님에게 은근 협박을 가하거나, 하느님에게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참된 신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