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879호 2025. 7. 20 
글쓴이 이균태 신부 


마르타+마리아=참으로 좋은 몫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
김해성당 주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누구라도 손 좀 빌려주면 좋겠다고 불만이나 불평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르타의 볼멘소리에 맞장구를 치고도 남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보다는 마리아를 더 칭찬하십니다. 언뜻 보면 마르타의 바쁜 손보다 마리아의 고요한 귀를 칭찬하시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은 마르타의 봉사를 폄하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마르타는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기 완성과 과도한 역할 의식, 또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불안정한 내면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반면 마리아는 주님 앞에 자신을 비우고 그분 곁에 머물며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傾聽)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둘을 보시며 ‘많은 일’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마르타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상태’를 타이르시며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처럼 분주함에 갇혀 말씀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리아처럼 경청을 통해 내 삶의 근본 방향을 하느님께로 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활동은 방향을 잃은 열정으로 빠질 수 있고, 실천 없는 관상은 닫힌 침묵에 불과하며, 말씀 없이 반복되는 열심은 쉽게 피로에 빠지고, 지나친 자기 확신 속에 빠져 망상에 사로잡힐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너도 마리아처럼 되어라”가 아니라, “너도 먼저 나의 말을 들어라.”는 초대입니다.

   마르타가 옳은 것 아닌가? 마리아가 맞나? 이는 OX 퀴즈문제가 아닙니다. 마르타처럼 살 것인가, 마리아처럼 살 것인가? 역시 양자택일(兩者擇一)의 문제도 아닙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마르타와 마리아라는 양 날개를 마음껏 펼쳐낼 때, 균형 잡힌 신앙의 삶이 펼쳐집니다. 말씀에 뿌리내린 봉사, 봉사를 통해 드러나는 말씀의 진리가 함께 호흡하는 통합의 영성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고, ‘관상한 것을 타인에게 전하라(Contemplata aliis tradere)’는 사제직 영성의 정점으로 본 아퀴노의 토마스 성인의 말씀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마리아의 고요한 귀 기울임뿐만 아니라, 마르타의 땀 흘리는 섬김 안에서 우리는 ‘좋은 몫’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하느님 사랑은 이웃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관상은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르타’와 ‘마리아’는 신앙생활이라는 하나의 동전의 양면임을 늘 체현(體現)하며 살아갈 때, 바로 거기에 참된 거룩함이 자리하고,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참 좋구나! 나를 닮았구나!” 하며 빙긋이 미소 지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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