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는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 쓰였던 공동 번역 성서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 새로 나야 한다 »고 번역되어 있다. 어떤 것이 맞는가 ? 둘 다 맞다.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 아노텐 (anothe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다시’라고도 번역될 수 있고, ‘위로부터’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변화되고 변형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남은 결국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된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나,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둘 다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영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부활이라는 말이 바로 다름 아닌 위로부터 태어남이라는 말이고, 새로 태어남이라는 말이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다. 부활의 시간과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고, 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제껏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만 살아 왔던 그 «나 »가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있음을 믿는 사람이다. 죽고 난 후의 미래에 일어난 일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의 부활을 받아 들이고, 나의 부활도 일어 날 것임을, 일어 나야 할 것임을 믿는 사람이다.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 20)이 바로 다름 아닌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 부활의 장소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소유주였던 그 무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 부활의 장소이고, 내가 살고 있는 « 지금 여기 »가 부활의 장소인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여기가 꽃자리이고, 지금 여기가 우리의 부활의 자리라는 인식이 자신 안에서 우뚝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마침내 우리들의 부활 신앙에 힘입어 이렇게 선포할 수 있다: « 예수께서는 나를 통하여, 나와 함께, 내 안에서 부활하셨다 ». 오늘 복음은 나에게 지금 여기라는 내 삶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