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의 은총
윤경일 아오스딩
좌동성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인이 되면 사회적 고립상태에 놓이게 된다. 새로운 만남이 없는 대인관계는 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신체 노화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디가 아프면 혹시 암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된다. 수입원도 줄어드는 등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이 시기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쉽게 겪는다. 또 뇌기능이 떨어져 시상하부의 노화는 불면증을 초래하고 더 나아가 광범위한 뇌세포의 위축이 일어나면 치매로 진행하기도 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노인은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사회문화현상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스럽다. 첨단과학문명 앞에서 눈뜬장님과도 같다. 한 예로 자식이 나이 든 어머니를 위해 빨래와 건조가 동시에 되는 일체형 세탁기를 사 드렸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손빨래를 하고 계셨다. 최신형 세탁기는 기능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어 노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노년기는 이처럼 쇠락의 시기다. 그래서 젊은층이 노년층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여기는데 스탠퍼드대학의 한 연구는 의외로 노인층이 젊은층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젊을 때는 정서적 혼란과 불안, 갈등이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원숙해지면서 안정감을 이루기 때문이다. 또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기쁨, 행복, 보람 등에 있어서 보다 타협적이고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심에서 밀려나고, 배우자나 친한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고, 주변의 관심 부족은 노인을 외로움과 단절상태에 빠져들게 한다. 만년기를 맞이한 작가 헤르만 헷세 역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젊음에 대한 회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젊음에 더 가치를 두었다.
누구나 늙고 싶지 않아도 늙을 수밖에 없다. 지나온 세월이 덧없고 허망하기만 할까. ‘지혜는 나이가 주는 미덕’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자신과 타인의 경험과 감정 관계를 중요한 가치로 두게 되는데 이를 두고 노년기를 인격의 통합 단계라고 말한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단계별 성취를 회고하며 의미있고 성공적인 경험과 실패, 좌절과 고통스런 경험을 두루 수용하는 통합성을 이루는 단계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노년기는 소멸기가 아니라 또 다른 활동기라 할 수 있다.
노인이 사회의 주역은 아닐지라도 초고령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사회봉사활동이나 커뮤니티 모임 또는 다양한 정서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좋은 수단은 신앙 안에서의 활동이다. 각종 신심 단체에 참여하여 서로의 감정과 경험을 나누어보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이 노년기를 은총의 시기로 잘 엮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