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3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분께서 걸어가신 삶과 그분의 십자가의 길,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길이다. 교회는 그 길을 그래도 신자된 도리로서 걸어 가보자고 신자들을 다독거리거나, 명령하기도 한다. 

     
그 길에 들어서면, 반드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걸어 가는 길이 그 하나이고, 다른 길은 엠마오로 향하던 발길을 다시 되돌려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다. 예루살렘은 부활과 생명과 사랑의 상징이고, 엠마오는 낙망과 관습과 무관심의 상징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인가 ? 엠마오로 향하는 길인가 ?

     
이 선택의 순간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알리시지 않은 채, 동행하신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만 동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선택의 순간 순간마다, 예수께서는 동행하신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인생길은 우리만 홀로 고독하게 걸어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외롭게 걸어가도록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생길에 그리스도께서 동행하신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눈이 가려지고 어두워지면 동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긴, 엠마오로 향하던 예수의 두 제자들도 예수의 동행을 알아 채지 못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려버렸을까 ? 예수의 죽음, 십자가 상의 죽음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꿈꾸었던 스승에 대한 그들의 상념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했던 것이다. 영광의 메시아, 기적을 일으켜, 다 죽어 가는 사람들을 벌떡 벌떡 일으켜 세우고, 힘 있는 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당당했던 메시아, 없는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프고도 안타깝기 그지 없는 삶에 함께 눈물을 흘리던 메시아, 배고픈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던 덕분에 사람들이 왕으로 모시고자 했던 메시아, 성전의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쫓아내고,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려 놓으셨던 메시아, 이러한 영광과 승리의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이 그 제자들의 눈을 가리게 했던 것이다. 

     
이 두 제자들과 눈이 가려지고 어두워져서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적지 않은 신자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신앙이라는 씨앗은 그 내면에 있지만, 그 씨앗이 싹트지 못하고, 그저 씨앗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두 제자들도 십자가 사건 이전에 예수께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배웠고, 부활에 대한 신앙도 배웠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들도 세례를 받기 위해서 교리를 받게 되었을 때에, 하느님에 대한 신앙도 배웠고, 부활에 대한 신앙도 배웠다. 그 배움은 마치 땅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늘 복음은 그 씨앗을 싹 틔우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준다. 첫째, 말씀을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실존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말씀 안에서 현존하시면서 우리들의 마음 속을 뜨겁게 하실 뿐 아니라(루가 24, 32), 우리들과 동행하신다. 단순한 성경 지식, 교리적인 정보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이런 것들은 생기 없는 신앙으로 이끌 뿐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길에 동행하고 있음을 먼저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이 믿음은 반드시 실천을 동반하는 믿음이다. 사랑의 실천이 함께 하는 믿음의 생활을 살아가다 보면, 교회 안팎에서 만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사건들 속에서 그분의 동행을 언젠가는 느끼게 되어 있다. 

     
그래서, 둘째로 함께 빵을 나누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밥상 공동체 안에서,함께 빵을 나눌 때에’, 부활에 대한 신앙의 씨앗은 싹을 틔우게 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지구촌 수많은 곳에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봉사하면서 살고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있다. 가난한 자를 도우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라하시는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명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까이에서 실제로 체험한다. 그럼으로써 지치지 않고 봉사할  있는 능력을 계속 충전 받는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다는 교리를 받아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진실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삶의 여정 한 가운데서만나는 체험이 중요하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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