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9일 부활 성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부활은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한 종교적인 장치 혹은 해답 같은 것도 아니다. 부활 이야기는 단순히 예수님 믿다가 죽은 사람은 이다음에 부활해서 천당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떤 이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다고 하지만, 부활신앙은 허무를 달래기 위한 진정제나, 신경 안정제도 아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 생애 전체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예수님은 세례 때에 하늘로부터 들려온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 »이라는 그 말씀을 십자가 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지키셨다. 그렇게 죽은 예수를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부활시키셨다.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선포와 행동들예수님의  전체가 궁극적으로 옳다고 인정하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라는 피맺힌 절규의 물음에 하느님은 «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다 »며, 당신의 아들을 부활시키셨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아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셨다하느님은 고통 속에서도, 아니 바로 그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숨겨진  현존하시는 극도의 위협무의미허무함버림받음외로움과 공허함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고 붙잡아 주시는 인간의 곁에서 항상 인간과 함께 아파하시는 함께 고통 당하는 하느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이 되시는 하느님,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심을 계시하셨다.

       
부활은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로운 저항, 거짓에 대한 하느님의 진리의 저항, 죽임에 대한 하느님의 살림의 저항이다. 밤새 모진 바람에 후두둑 다 떨어져 버리는 벚꽃잎은 꽃비가 되어 다시 한번 땅에서 피어나듯, 이 땅의 수많은 울부짖음이 마침내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려 세상을 바꿀 힘으로 바뀌는 것이 부활이다. 이러한 부활을 모든 사람이 믿지는 않는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부활을 믿었던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 그분의 손에 난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그분의 옆구리에 난 구멍에 손을 넣어보지 않으면 결코 믿지 못하겠다 »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시대에 참으로 기묘하게도 예수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빠스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계엄선포, 그리고 그 다음날인 12월 4일 오전 6시 30분 계엄해제, 그 이후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1분까지 124일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던 그 사흘이었다. 그리고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024년 12월 3일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 땅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무엇이 똥이고 무엇이 된장인지 도대체 구별이 되지 않던 그 애매모호함에 종지부를 찍었던 « 주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다. 그 갈등과 분열은 단순히 여당 야당의 갈등이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도, 이념의 대립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할 헌법을 지키느냐, 어기느냐의 문제였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권한도 헌법을 능가할 수 없다는 이 대원칙을 지키느냐무시하느냐의 문제였다. 헌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요, 그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 불의였다.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수단이었다는 혹세무민과 고집불통 옹고집을 바탕으로 한 내 마음대로 하겠다, 자기식의 자유민주주의 운운해대는 후안무치가 빚어낸 불의에 맞선 정의의 승리가 다름 아닌 대통령 윤석열 파면 선언이었다. 파면이 부활이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듯, 파면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 존재한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일어났던 계엄과 탄핵소추 그리고 파면이 바로 불의에서 정의에로 건너가는 빠스카였음을 알아 듣지 않으려는 이들도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존재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불의, 거짓, 그리고 그 모든 악의 결정체인 죽음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계가 결코 허무가 아니라 불사불멸의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고백하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우리도 지금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부활에 대한 신앙이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 누리는 자리가 부활의 자리가 아니라, 살아서 제대로 생명을 만끽하는 자리, « 지금 여기 »가 부활의 자리다. 

     « 온갖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고 »(2코린 4,8), 희망하는 사람들의 희망의 근거가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요, 그 정의의 열매가 평화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새하늘과 새땅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낳게 하며, 이러한 희망을 가진 이는 그 어떠한 것에도 굴하지 않는다. «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 때문이다.(로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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