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8일 성 금요일 십자가 예식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현존하는 종교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그 어떤 종교도 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죽음은 강한 것이고 죽음은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리는 것제 아무리 강력하다는 모든 것들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오직 신만이 예외다신이 신일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교만은 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제껏 이 세상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도 너무나 많았고 또 터무니없이 살해되어야 했던 숱한 이름들이 있었지만우리는 그런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똑같이 놓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이지는 않았다. 단지 억울하게 살해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그의 죽음이 너무도 처참한 고통의 과정 끝에 이루어진 극심한 슬픔이어서가 아니라바로 그의 죽음이 하느님의 죽음임을 우리가 깨달았기 때문에, 우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자리이 곳에 모인 것이다. 성 금요일,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최소한 예수라는 분의 죽음을 그저 한 인간의 죽음으로만 끝내지 않기 위해서다. 그분의 죽음은 하느님의 죽음임을 다시금 깨닫기 위해서다.

         
성금요일의 슬픔을 물을 때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예수님께 가해진 극심한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고통이 내 죄의 결과, 우리 죄에 대한 보속이라는, 대단히 영성적인 이야기도 많이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성 금요일은 하느님 아버지의 죽음과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날이다. 

       
사실 성 금요일은 “아버지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루가 22,42) 라고 세 번이나 통사정을 하던 겟세마니에서의 아들의 간청을 끝내 뿌리쳐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이다. 쇠고챙이가 잔뜩 박힌 채찍에 살점이 우두둑 떨어져 나가던 아들의 신음과 날카로운 가시관이 머리 깊숙이 박혀버려 정신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치명적인 상처그리고 그런 그에게 가해진 돌들과 침 뱉음, 조롱과 능멸을 묵묵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 말하는 날, 왜 나를 버리셨나고왜 이렇게 처참하게 나를 버리셨냐고 짐승처럼 매달려 소리 지르던 아들의 마지막 비명까지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 말하는 날이 오늘 성 금요일이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 자식이 칼로 등을 찌르더라도 그 칼을 품에 안는 것이 부모요자식의 죄마저 내가 달게 받겠다고 무릎을 꿇는 것이 부모다. 차라리 내가 그 지독한 고통을 겪었으면 겪었지 자식의 고통에 나 몰라라하는 부모는 없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아버지께서도 그 아들을 가슴에 묻으셨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죽으셨다. 결코 죽을 수 없는 분이 아들의 죽음에 온전히 동참하셨다. 오직 사랑하기 위하여하느님 그분께서 이 죄 많은 우리를이 목숨 하나 살리고자 당신의 그 귀한 아들을 죽이셨고, 당신도 죽으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죽음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마저도 이렇게 죽음 속에 보내야 했던 그 하느님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슬퍼하고,  사랑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고, 이 사랑 때문에 마침내는 기뻐할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 금요일 십자가 예식을 통해서 십자가를 경배하는 것은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저 십자가를 통해서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그 사랑을 기념하는 것이요우리가 저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 또한 이미 우리를 위하여 그 피의 값을 톡톡히 치 내신 아버지의 사랑에 전적으로 내 자신을 의탁 드려야 함을 깨우치기 위해서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거대한 침묵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하느님의 거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죽음과 맞바꾸신 우리 구원의 표시다. 저 십자가를 볼 때마다 아들의 고통에 절규하고 까무러치던그러나 묵묵히 그 고통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던 하느님의 그 사랑과 잘 만나시기 바란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저 십자가오직 하느님의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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