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시골에서 조부모의 손에 자란 필자는 열 살쯤 되던 시기에 할아버지를 여의고 한동안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평생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논으로 밭으로 다니시던 할머니는 혼자가 되시면서 농사일을 줄이셨고 손녀인 나와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앉아서 웃고 즐기는 삶을 선택하셨다. 비록 보리밥과 김치가 일상인 삶이어도 여유와 웃음이 있는 쪽을 선택하신 것이다. 할머니는 할머니 이름 석 자도 쓰고 읽을 줄 모르는 분이셨지만, 지금껏 제가 본 가장 강인하고 지혜로운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집 근처 밭에도 가 보고 이웃집 할머니 댁에도 가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차, 오늘 이웃 동네잔치에 가신다고 말씀하신 게 떠올랐다. 오시면서 떡이랑 찌짐이랑 들고 오시겠구나하는 기대를 위로 삼아 숙제를 하면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렇게 해가 졌다. 가로등 따위는 없던 그 시절 시골의 밤은 어린아이 혼자서는 충분히 무시무시할 정도의 적막과 어둠으로 둘러싸이고 있었다. 그 정도면 기다림은 차츰 분노로 변할 수 있었다. ‘손녀가 기다리는데, 혼자서 밥도 안 묵고 기다리는데, 할매는 도대체 ...’
그런데도 저만치 하늘의 달과 별은 자기 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니 아무 죄도 없는 달과 별도 미움의 대상이 된다. 키가 닿지 않아 마루에 등도 켜지 못하고 혼자서는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시골 농가의 마루 끝에 앉아서 대문만을 뚫어지라 바라볼 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달이 점점 더 지붕 위로 올라오는 거로 봐서 두어 시간은 지난 듯했다. 이제 분노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할매 혼자 밤길에 오다가 어디 넘어졌나, 아재들은 안 데려다주고 뭐하노.’
그때쯤이면 열살 갓 넘은 여자아이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다. ‘혼자가 되면 우짜노, 영영 이대로 안 오시면 나는 우짜노?’ 그때였다. 오래된 오토바이의 덜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대문이 열린다. 그러고는 윗동네 아재의 등 뒤에 꼭 매달린 자그마한 체구의 칠순 넘은 우리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내리신다. 이제까지의 기다림과 분노와 걱정이 한숨에 날아가고 아이는 할머니를 꼬옥 껴안는다. “많이 기다렸재. 오래 못 본 친척이 하나둘 늦게 도착을 해서 ...”
사랑은 신뢰고 믿음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할머니는 나를 잊지 않을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오리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이 밤을 넘기지 않을 것이고 이 밤 동안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배웠다. 그러니, ‘빛이신 그분이 (때로는 조금 늦게 오시더라도) 내 삶에 꼭 오신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희망과 사랑으로 선하게 살아가자. ‘사랑’이신 그분을 향한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시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