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반인의 삶

가톨릭부산 2025.06.04 09:51 조회 수 : 6

호수 2873호 2025. 6. 8 
글쓴이 류영수 요셉 

직반인의 삶
류영수 요셉
주례성당 청소년분과차장
 
    몇 년 전 유행했던 ‘연반인’이라는 말이 있다. 유튜브 콘텐츠 진행으로 유명해졌던 한 방송국 PD가 자신은 연예인만큼의 인지도를 얻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만 정작 방송국 직원으로 연차에 맞는 월급을 받고 살아가기에 ‘연예인 반 일반인 반’ 둘의 사이에 걸쳐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뜻으로 했던 말이다.

   성당 혹은 범위를 조금 넓혀 우리 교회의 아이들을 만나는 나의 위치도 딱 그와 같다. 일상의 삶은 교구 중고등부 담당자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직업인으로 보내다, 매주 본당으로 돌아가면 다른 교리교사 선생님들과 다름없이 제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만나는 교회 공동체의 봉사자가 되는 직업반 봉사반 ‘직반인’의 삶을 살고 있다.

   유독 동갑내기 또래가 많았던 성당의 동기들과 보낸 학창 시절의 추억, 그리고 그 행복함을 이어가고 싶어 대학생 시절을 불태웠던 교리교사 활동. 그때만 해도 막연히 행복하게 아이들을 만나고 성당에서 봉사하는 일 자체가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기에 오래도록 삶의 일부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것이 일이 되는 순간 더 이상 막연히 즐거울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교구의 교리교사들과 청소년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했고, 나의 노력이 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 좋은 자양분과 불씨가 되어 주어야 했기에, ‘잘’ 해야만 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몫이었고, 나의 일에 대한 책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껏 본당의 교리교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본당에서의 봉사만큼은 순수하게 아이들을 만나던 20년 전의 나의 원점을 잊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에 더해 교회 공동체가 나라는 사람을 길러주었듯 나의 아이도 교회 공동체의 보살핌으로 언젠가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가 자랄 텃밭을 가꾸는 마음도 함께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리교사로 봉사하는 시간은 결국 나를 바로 세우고 ‘일로 만난 사이’인 이들에게도 교리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으로서 오늘의 나를 살게한다. 그리고 나의 일에 대한 책임감은 내가 공동체 안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그들의 성장에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드러난다.

   이 두 개의 정체성이 나를 혼란하게 하는 어긋남이 아닌 나를 올바로 서게 하는 두 다리와 같은 버팀목으로 굳건해 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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