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미사(3/31)
[ 머리글 ]
< 희망의 징표가 되기로 >
TRAN QUOC PHONG (요셉) 신부 / 부산본부 베트남담당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즉위 12주년을 특별하게 기념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폐렴으로 제멜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고 계심에 의하여 병상에서 의료진과 함께 즉위 12주년을 기념하셨습니다. 교황님의 즉위 12주년을 맞이하여 바티칸 뉴스 편집장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최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님을 위한 묵주기도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연약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전쟁이 아닌 평화, 억압이 아닌 대화, 무관심이 아닌 연민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 기념일을 교황님께 축하드리며, 저희에게는 여전히 교황님의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전 세계의 신자들이 투병 중인 교황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교황님께서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희망합니다. 전 세계 신자들이 교황님의 목소리, 그리고 교황님을 뵐 수 있기를 바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신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불을 태우고자 합니다.
교황님께서 교황청의 새 복음화 연합협의회의 회장인 리오 피시켈라 대주교님에게 보낸 2025년 희년에 대한 서한 안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의 불꽃을 태우고, 사람들이 새로운 힘과 확신을 되찾아 열린 마음, 신뢰하는 영혼, 넓은 비전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가오는 성년은 우리가 모두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쇄신과 재생의 서곡으로서 희망과 신뢰의 분위기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년의 주제를 '희망의 순례자'로 선택한 것입니다.”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Spes Non Confundit) 안에서 교황님께서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이 희년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되살릴 수 있도록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희망의 이유를 찾도록 도와줍니다.”라고 희망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황님께서 “희년 동안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한 희망의 구체적인 징표가 되라고 부름을 받습니다.”라고 초대하셨습니다. 이는 투병 중인 수많은 환자, 꿈과 열망이 좌절되어 있는 젊은이들,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는 노인들, 생핌품조차 부족한 가난한 이들, 그리고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뒤로하고 떠난 이주민을 위해 구체적인 희망의 징표가 되도록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부산교구 노동사목은 각자의 자리에서 노동자, 특히 이주민 노동자를 위한 희망의 징표가 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이주민으로 구성된 본당의 주임 신부님이 이주민 신자 부부의 집을 방문하였던 일화를 기억합니다. “왜 성당에 와서 우리를 찾지 않았는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면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그 부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신부님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맨 마지막으로 저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전에 여호와 증인들, 다른 개신교 신도들, 그리고 불교 신도도 먼저 찾아왔습니다.”
부산교구 노동사목은 각자의 자리에서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에 말씀드렸던 신부님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또 과연 제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 특히 이주민을 위해 희망의 징표가 되도록 실천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순절의 정신에 따라 사목적 회개와 쇄신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반성합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제가 먼저 찾아가는 것이 사목적 회심입니다.
다음과 같이 교황님의 요청을 기억하여 실천하며 희망의 징표가 되도록 합니다.
“희망의 징표는 자신과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뒤로하고 떠난 이주민을 위해서도 존재해야만 합니다. 이들의 기대가 편견과 거부 때문에 결코 좌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이의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그들을 받아들이는 환대의 정신에는 그 누구도 품위 있게 살아갈 권리를 거부당하지 않기 위한 책임감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국제적 긴장의 고조로 전쟁과 폭력과 차별을 피하려고 이주할 수밖에 없는 망명자, 실향민, 난민은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고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 고용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Spes Non Confundit, 13)
[노동과 신앙]
< 孟母三遷之敎의 유감 >
서영섭 (아우구스티노) 신부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13년 전의 일이다. 아니 13년 전 일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13년 전과 지금이 한치 다름없는 건 13년 전에도, 지금도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바라는 미사가” 해마다 봉헌되고 있기 때문이다.
13년 전을 기억하면 당시에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를 마칠 무렵 해고 노동자의 가족 한 분이 발언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울먹이면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이 자동차를 만들든, 배를 만들든, 기타를 만들든 일터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당혹스러웠다.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공통된 소망이라면 자식이 소위 블루칼라보단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클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이야기한 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배를 이야기한 건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 기타를 이야기한 건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 거리에서 내몰려 삶을 이어나가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노동자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생산 노동자들이다. 잠깐 이 글을 읽는 걸 멈추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어느 하나 노동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게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은 수없이 들었을 테다. 너무나 들어서 어쩌면 별 감흥 없는 고리타분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싶다. 당장이라도 생산과 작업을 멈추면 여지없이 불편함이 아니라 불만을 드러낸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임에도 온갖 이념을 덧칠하여 국가권력과 자본에 편승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력화하는 데에 쉽사리 동참한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가 분명히 있다. 그 존엄과 권리는 서글프게도 활자로만 존재하고 인정받는다.
그래서일까? 높은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건, 내 자식만큼은 어떻게든지 생산 노동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삶은 우리가 말버릇처럼 하는 노동자는 존엄하고,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과 달리 노동자와 노동은 가뭇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금 오래된 설문이기는 하지만 12년 전에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노동자’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들을 생각하는 노동자는 “거지”, “장애인”, “못 배운 자”, “득이 없다” 이러한 인식 12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는 게 우리의 암담하고도 불편한 현실이다.
맹자의 모친이 몸소 체험했던 “孟母三遷之敎”가 유감인 건 노동 그 자체를 왜곡하고 폄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는 맹자의 모친 행동은 자식인 맹자에게만 유익하겠다. 하지만 모두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유익한 것은 절대 아니다.
어째 이 세상을 나 혼자만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 존재 그 자체는 서로 유기적이며, 공동체성을 지니는 존재이기에 나 혼자만이 잘났다고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다. 맹자의 모친이 과오는 노동자 각자가 존중받아야 하는 고유한 노동을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는 그렇다. 못 배워서, 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을, 원한 것을 생산해 내는 주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노동자들을 무시해야 할 논리와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만일 있다면 그건 노동자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그 어느 하나 전혀 정당성이 없는 당신의 무례하고 천박한 언행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노동 안에서 행위의 형태가 다를 뿐이지 내가 고유하고 특별한 일을 한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닌 게 아니라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 바오로 6세의 “여러분도 노동자입니다.”라는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노동과 법]
< 가족돌봄 등을 위한 휴직, 휴가 및 근로시간 단축제도 >
전 시 춘 (율리오) / 노동법 교수
이번 호에서는 가족돌봄휴직, 가족돌봄휴가 및 가족돌봄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에 대해 설명한다.
1. 가족돌봄휴직
1) 가족돌봄휴직의 신청
근로자는 조부모,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자녀 또는 손자녀(이하 “가족”이라 한다)의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하여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족돌봄휴직을 허용하여야 한다.
2) 다음의 경우에는 사업주는 가족돌봄휴직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
① 돌봄휴직개시예정일의 전날까지 해당 사업에서 계속 근로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근로자가 신청한 경우
② 부모, 배우자, 자녀 또는 배우자의 부모를 돌보기 위하여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한 근로자 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가족의 부모, 자녀, 배우자 등이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볼 수 있는 경우
③ 조부모 또는 손자녀를 돌보기 위하여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한 근로자 외에도 조부모의 직계비속 또는 손자녀의 직계존속이 있는 경우
④ 사업주가 직업안정기관에 구인신청을 하고 14일 이상 대체인력을 채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대체인력을 채용하지 못한 경우
⑤ 근로자의 가족돌봄휴직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는 경우로서 사업주가 이를 증명하는 경우에는 사업주는 가족돌봄휴직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
3) 가족돌봄휴직의 사용
가족돌봄휴직 기간은 가족돌봄휴가 기간을 포함하여 연간 최장 90일로 하며, 이를 나누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나누어 사용하는 1회의 기간은 3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
2. 가족돌봄휴가
1) 가족돌봄휴가의 신청
근로자는 가족(조부모 또는 손자녀의 경우 근로자 본인 외에도 직계비속 또는 직계존속이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의 질병, 사고, 노령 또는 자녀의 양육으로 인하여 긴급하게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2) 가족돌봄휴가 시기의 변경
사업주는 근로자의 가족돌봄휴가 신청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가족돌봄휴가를 주는 것이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와 협의하여 그 시기를 변경할 수는 있다.
3) 가족돌봄휴가의 사용
가족돌봄휴가 기간은 연간 최장 10일로 하며, 일단위로 사용할 수 있다.
3.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1)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의 신청
근로자는 가족돌돔 등을 위하여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으면 사업주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① 근로자가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하여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한 경우
② 근로자 자신의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부상 등의 사유로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경우
③ 55세 이상의 근로자가 은퇴를 준비하기 위한 경우
④ 근로자의 학업을 위한 경우
2) 다음의 경우에는 사업주는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근로자에게 그 사유를 서면으로 통보하고 휴직을 사용하게 하거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는지를 해당 근로자와 협의하여야 한다.
① 가족돌봄등단축개시예정일의 전날까지 해당 사업에서 계속 근로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의 근로자가 신청한 경우
② 사업주가 직업안정기관에 구인신청을 하고 14일 이상 대체인력을 채용하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대체인력을 채용하지 못한 경우. 다만, 직업안정기관의 장의 직업소개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채용을 거부한 경우는 제외한다.
③ 가족돌봄등근로시간단축을 신청한 근로자의 업무 성격상 근로시간을 분할하여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그 밖에 가족돌봄등근로시간단축이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로서 사업주가 이를 증명하는 경우
④ 가족돌봄등근로시간단축 종료일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근로자가 신청한 경우
3)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의 사용
근로시간 단축의 기간은 1년 이내로 한다. 다만, 근로자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에 추가로 2년의 범위 안에서 근로시간 단축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단, 근로자의 학업을 위한 경우는 연장할 수 없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는 경우 단축 후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이어야 하고 30시간을 넘어서는 아니되며, 사업주는 근로시간 단축을 하고 있는 근로자에게 단축된 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로를 요구할 수 없다. 다만, 그 근로자가 명시적으로 청구하는 경우에는 사업주는 주 12시간 이내에서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노동사목이 읽은 책]
올해 노동사목 실무자들은 함께 책을 읽고 관련한 나눔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로, 저자인 이승윤 교수는 급변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성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노력이 어디에서 실패하는지를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노동 현장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얻고자 합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 주 현(율리안나) / 부산본부 노무실장
한국 사회에서 간과되고 투명하게 취급되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현실을 깊이 있게 조명한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됩니다. 1부 '격랑의 노동현장, 준비되지 않은 사회'는 ‘혁신’이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개처럼 뛰는’ 불안정노동자들의 일터를 포착하고, 2부 '노동자가 쓰러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는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허술한 사회 안전망을 보여줍니다. 3부 '청년노동, 누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청년 불안정노동자들의 삶과 청년 세대 양극화를 다루며 4부 '경계에서의 고민'은 연구자로서 학자의 무지, 여성 연구자로서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담아냈습니다.
저자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아픈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청소노동자, 콜센터직원, 해고노동자, 청년노동자, 필수노동자, 새벽 배달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등. 다양한 모습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을 관통하는 특징을 연구자로서 그저 먼지로 뒤덮인 책과 논문에서 얻은 이론이 아닌 직접 현장과 노동자를 마주하며 느낀 현실의 다양한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많은 불안전노동자 중 ‘새벽 배달노동자’와 ‘아픈노동자’를 두드러지게 보았습니다. 소비자의 편의성을 노동권보다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새벽배송, 로켓배송, 빠른배송으로 죽음에 문턱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삶을 주목해야 함과 동시에 삶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어떤 노동이 우리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지 실체를 선명히 드러내야 함을 느낍니다. 특히 저자가 제안한 정책 중 ‘새벽노동 규제’는 단순히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건강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필수적 조치로 여겨집니다.
2023년 우리나라 산업재해 재해자 수는 136,796명, 사망자는 2,016명으로 하루평균 375명 이 다치고,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자꾸만 유예하다가 노동자가 피눈물을 흘리는 사회, 일하다가 죽어도 죽음의 책임을 유가족이 밝혀야 하는 사회에 살게 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불안정노동자의 현실과 삶에 대해, 이를 연구하는 학자의 몫과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91p
이것은 연구자의 책임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로 여겨집니다. 일하다가 죽어도 유가족이 이를 증명해야 하는, 아픈 몸을 ‘하자 있는 상품’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합니다. 불안전노동자인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며 저 또한 사고가 터져 피가 온 사방을 적실 때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 아닌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함께 건강하게 안전하게 잘 살아가기 위한 제도적 차원의 도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노동자를 병들게 합니다. 불안전노동자의 노동을 드러내고, 그 불안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절실합니다.
< 불편의 감각 >
최 은 진 (미카엘라) / 부산본부 노무팀장
문득,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달달한 커피가 먹고 싶은데, 집에는 블랙커피뿐일 때,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근사한 아이스 바닐라 라떼가 집 앞으로 옵니다.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동네 카페에서 말이지요. 참 편한 세상입니다. 물론 이러한 편리가 처음부터 익숙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웃집 문고리에 걸린 배달 커피 고작 몇 잔을 보고는, 밥도 아닌 음료수 배달이라니? 하며 너무하다 여겼던 것이 얼마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낯선 편리함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 커피는 어디서 온 걸까요? 아니, 이 비약적인 편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오늘 소개하는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는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술의 혁신 속에서 전통적인 노동의 개념은 녹아내렸고,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생겨났습니다. 배달 라이더, 새벽 배송 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부터 수많은 프리랜서, 자영업 자와 크리에이터들까지. 기술의 혁신이, 시대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직업을 창출하고, 합리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일상은 이제 매우 많은 부분을 그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된 것일까요?
저자는 화려한 발전과 혁신 뒤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추어 냅니다.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라는 이름 뒤 교묘하게 숨겨진 그들의 불안정성을 꼬집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율적이고 독립된 존재일까요? 책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통제, 보이지 않는 보호, 외면당한 노동. 가려진 노동의 주체, 그들은 보이지 않는 모호한 경계의 자리에서,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책임이 필요한 노동자가 보이지 않으니, 사람이 마치 부품처럼 쓰이고, 버려지고, 사라집니다.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굴레가, 고통이, 죽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저자의 통찰을 따라가면서, 저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불안정 노동자로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껴보았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어떤 일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스스로 성실하고 떳떳하기만 하다면 모든 것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성실이, 정직함이 꼭 무언가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미, 모두가 참 열심히인 세상입니다. N잡쯤은 해야 살아남는 사회. 거대한 경마장이 되어버린 듯한 이 사회에서, 개인의 성실함이 정말로 전부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대체 이 경마장의 관객은 누구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달리게 만드는 걸까요?
코로나 시국, 본업이 전부였던 친구가 가장 먼저 찾아 나섰던 것은 배달 아르바이트였습니다. 불안정 노동이 넓고, 보편적으로 우리 주변에 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이 불안정 노동과 맞물려 톱니처럼 굴러갑니다. 불안은 피로를 낳고, 피로는 편리를 갈망하게 합니다. 편리는 거대한 시장이 되고, 시장은 과도한 것들마저 일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점점 불편에 대한 내성이 사라집니다. 타인에 대한 감각 또한 무뎌집니다.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되면, 수면의 찰방거림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우리가 온전히 잠식되지 않기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기를 스스로 바래봅니다.
[ 일과 시선 ]
가난한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사랑의 실천이며 평화의 길입니다.
장영식 (라파엘) / 사진가
[ 지난달 한 일 ]
▶ 2025년 국내이주사목 전국 실무자 연수 (03/17~19)
지난 3월, 2025년 국내이주사목 전국 실무자 연수가 대전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이주사목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강의를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강의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격려와 공감의 시간도 가지며, 현재 이주사목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앞으로의 여정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영화 ‘3학년 2학기’ 상영회 (03/14)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직업계고 청소년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3학년 2학기’ 상영회를 열고, 상영 후 이란희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을 사실적으로 담아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교육 및 노동환경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란희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해도, 타고난 재능을 찾지 못해도, 꿈이 없어도,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빛나는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운이 좋지 못해도, 성실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인정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는 전국적으로 상영회를 진행한 후, 올해 하반기(‘2학기’) 정식 개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미사 (03/31)
지난해 1월 8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의 두 여성 노동자가 공장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450일(3월 31일 기준)이 되었습니다. 전기와 물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을 기록하였습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도 햇살은 따뜻했던 지난 31일, 죄책감과 미안함, 반가움과 간절함을 안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 노동자와 신자,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모인 연대의 손길들. 이 긴 싸움이 정의로운 결실로 마무리되기를, 그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기를 모두 함께 기도했습니다. 고공농성은 단지 두 사람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함 속에서 외롭고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이 필요합니다. 함께하는 마음들이 모여 희망이 되고, 변화의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 이 외 활동
3/2(일) 양산·웅상 영어공동체 노동법교육 / 양산성당, 웅상성당
3/4(화) 서면시장번영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노동사건지원 / 부산구치소
3/5(수)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집행위회의 / 교육공무직본부 부산지부
반얀트리 화재참사 선전전 / 부산시청
3/6(목) 의료지원 / 동아대학교병원
3/7(금) 노동사건지원 / 부산출입국외국인청
3/9(일) 부산 영어공동체 노동법교육 / 사상성당
3/11(화) 의료지원 / 부산의료원
서면시장번영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총회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3/12(수) 병자성사 / 부산대학교병원
3/13(목) 반얀트리 화재참사 기자회견 / 부산고용노동청
의료지원 / 부산의료원
3/14(금)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크워크 영화상영회 / 모퉁이극장
3/17~19(월~수) 국내이주사목실무자연수 / 정하상교육회관
3/21(금) 의료지원 / 부산의료원
노동사건지원 / 부산출입국외국인청
3/24(월) 의료지원 / 부산의료원
노동사건지원 / 부산출입국외국인청
노동사건지원 / 사업장
반얀트리 화재참사 노동청 1인시위 / 부산고용노동청
3/25(화) 서면시장번영지회 중식 선전전 / 서면시장
심리치유모임 / 노동사목센터
3/26(수) 사무국회의 / 노동사목센터
3/27(목) 의료지원 / 동아대학병원
의료지원 / 서부산센텀병원
바자울미사 / 노동사목센터
3/29(토) 주일학교 청소년노동인권교육 / 구포성당
3/31(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연대미사 / 한국옵티칼하이테크(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