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완성
손한경 소벽 수녀
성소국
부르심은 응답이 있어야 그 역할이 온전히 이루어진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을 부르심은 아마도 엄마의 부르심이 아닐까 한다. “밥 먹어라.” 놀거나 TV를 보거나, 요즘 같으면 컴퓨터 게임이나 휴대폰을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할 때도 있고 대답만 하고 밍기적 거리거나 마침 배가 고파 부르심을 기다린 때도 있었을 것이다. 제때에 가서 앉으면 가장 맛있을 때에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늦으면, 좀 식어버리거나 맛난 음식은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안 가고 버티다 등짝을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말만 하고 가지 않으면 진정한 응답이 되지 못한다. 행동이 따르는 응답만이 제대로 된 응답이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고도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고 그 중에서 사제 성소, 수도 성소 또는 혼인 성소로 또 부르고 계신다.
모든 부르심은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제 성소라면 신학교 입학미사 때 이름을 불리우고 대답하고 학부가 끝나고 대학원 과정으로 가면 독서직, 시종직에도 또 이름을 불리운다. 부제품, 사제품으로 이름 불리움 받으면 끝이 날까? 단순히 이름을 불리운다는 것 이상의 일들이 새사제, 중견사제, 원로사제들에게 일어나고 그에 합당한 응답이 이루어질 때 성소는 지속된다. 그렇다면 성소는 언제 완성될까? 아마도 하느님 앞에 가게 되는 날까지가 아닐까 싶다.
부활절을 지내고 선종하신 교황님께서 그 완성을 보여주셨다. 개인적으로 2014년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처음 뵈었다.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함께해 주신 교황님. 그해 당신의 휴가 대신 청년들과 함께 하시고자 이 먼 곳까지 오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교황님은 미사 전례를 위해 준비된 제구를 선택하실 때도 여러 개의 성작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성작을 선택하셨고, 다리가 불편하신 당신을 위해 준비된 의자도 크고 화려한 의자에는 앉지도 않으셨다. 청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자고 일어나라고, 깨어나라고 용기를 북돋우시는, 사랑 가득한 열정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사제로서 일생을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오셨고 마지막까지 교우들과 함께하시고자, 휠체어에 앉아서도 있는 힘을 다해 교우들을 향해 강복하시는 모습에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하신 요한 복음서의 말씀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렇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성소의 완성을 보여주셨고,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초대하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우리도 성소의 완성을 향해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