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네 복음서 모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상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최후 만찬은 예수님께서 체포되기 직전에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최후 만찬이야말로 예수님 삶과 사명의 핵심이자 종합이며,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유산이자 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2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통해 당신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또한 오늘 복음은 최후 만찬의 의미, 다시 말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성체성사의 의미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헌신과 봉사의 모습으로 보여주십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 최후 만찬 때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2독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당신 죽음의 피라고, 그리고 최후의 만찬이 바로 당신 피로 맺는 새 계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단어는 바로 “계약”입니다. 사실 성경의 이름도 “계약의 책”입니다. 구약은 옛 계약을 뜻하고, 신약은 새 계약을 뜻합니다. 계약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관계를 드러내 주는 단어입니다. 이 계약은 탈출기 24장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과 모세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입니다. 그리고 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소를 잡아서 하느님께 바치고, 그 피의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백성에게 뿌립니다. 이 계약을 통해,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보아 주시는 주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야훼를 섬기는 하느님 백성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계약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기기도 했고, 하느님 보다는 세속의 기회를 쫓아 살았습니다. 실상 인간의 죄 때문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은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끝까지 계약에 충실한 분이시고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고 새로운 계약을 맺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계약의 제물이 되고 계약의 증거가 되고자 했습니다. 소를 잡아 그 피를 제단과 백성에게 뿌리듯이, 예수님 스스로 당신 피를 하느님의 제단에 그리고 백성에게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 최후 만찬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시어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당신의 피를 쏟아서 하느님과 백성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최후의 만찬을 영원히 거행하여,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화해와 결합을 잊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과 백성이 맺는 새로운 계약이며, 그 계약을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영원히 기억하고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 직전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유산이며 유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유산과 유언을 매일 매일 미사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 만찬 미사의 의미와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밤 우리는 당신의 몸과 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주시는 첫번째 성 목요일 밤의 만찬 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첫번째 성 목요일 밤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합니다. 오늘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며,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