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2025년 3월 중순이 되면서, 울창했던 숲과 천년을 넘게 지켜오던 문화재들과 사찰들, 게다가 사람이 살고 있던 집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삶의 터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화마火魔글자 그대로 불마귀에게 빼앗겨 버려, 안타까움과 절망 속에 빠진 사람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며칠 혹은 몇 주면 끝날 줄 알았던 헌재의 판결이 123 세 숫자의 나열로 상징되는 바로 그 사건 이후 117일 지나도록 오리무중이니, 이 땅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 넋을 잃거나 정신이 나갈 정도로 몹시 놀랍고 두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과 현실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사순 제4주일을 맞았고, 돌아온 탕자, 혹은 자비로운 아버지 비유로 잘 알려진 오늘 복음을 들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는 등장인물이 넷 나온다. 아버지, 작은 아들, 큰 아들, 그리고 하인. 

   
첫번째 등장인물인 작은 아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돈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일까? 돈 관리를 잘해서 돈을 더 벌었다면, 그의 잘못은 없는 것일까?  방종한 생활을 하며 놀아났다는 것이 그의 잘못의 전부일까?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도 인맥과 연줄을 늘렸다면, 그의 잘못은 없어지는 것일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났고,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버렸다. 자기 혼자 행복을, 돈을 독식하고, 독점하려 했다. 바로 이것이 둘째 아들의 잘못이고 죄였다. 아버지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 그 삶이 비록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그 삶은 이미 죄인의 삶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해서는 참된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은 함께 사는 데에 그 삶의 의미가 있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관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등장인물인 하인, 이 하인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고, 그 이면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류의 사람은 대개 이런다. 열심하기만 하면, 돈 벌고, 뭐라도 하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인데, 기회의 땅이니 세계 각국에서 돈 벌러 오지 않느냐, 외국 노동자들 일자리를 젊은이들한테 다 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 이 땅의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이들이 자신들만의 잘못이나 게으름만으로 그런 처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열심히만 살아봐라, 어디라도 가서 일해봐라, 게임이나 하며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뭐라도 하는 것이 분명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5년 반을 살았던 울산에서는 새벽에 자동차 공장 앞에 나가 줄 서 있으면, 중공업 공장 앞에 나가 줄 서 있으면, 석유공장 앞에 나가 줄 서 있으면, 일용직으로 일할 수 있고, 돈도 만질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김해에서도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줄 서 있으면, 김해 외곽에 즐비한 농공단지에서 가서 줄 서 있으면, 일용직으로 일할 수 있고, 농사 짓는 곳에 가서 알바라도 하면, 돈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안정된 직장? 노예처럼 뼈빠지게 최소한 1년 이상 지나야, 겨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뿐이다. 1년 이상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살아야 한다. 사람 되려면,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으면 되었던 호랑이나 곰보다도 더 못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 번째 등장인물인 큰아들은 동생이 집을 나갈 때에나, 방종한 생활을 할 때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 할 수 있었음에도, 꾸짖고 나무랄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로부터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흠씬 맞아 터져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잔치까지 열어주는 아버지를 두고, 큰아들은 되려 아버지를 나무라고 꾸짖는 옹졸함마저 보인다.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이들, 강건너 불구경하면서 감놔라 대추놔라 말만 가득한 이들이 이 큰 아들과도 같은 이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큰아들이야말로 완고함의 대명사요, 어제 오늘의 교회다. 시대의 아픔에, 시대의 불의에 침묵하는 교회, 그저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면서 죄책감 한번 느끼게 하고, 고해성사 명분 하나 제공했다고 만족하는 교회, 부와 풍요와 지배와 권력의 눈치를 보다가 작은 아들이 폭삭 망했을 때라야, 속으로 고소하다고 여기면서 비로소 그제서야 겨우 정의를 말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 알량한 정의와 어슬픈 공로를 자랑삼지 말라 »며 «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은총과 자비를 청해야 »[1] 한다고 점잖게 으름장을 놓는 교회가 바로 다름 아닌 큰 아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시기, 회개의 때이다. 우리들 각자가 어떤 등장인물에 속하는지 우리들 각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 각자가 무슨 죄를 저지르고 살고 있는지 우리들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은 아들도, 큰 아들도, 하인도 모두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이기심을 버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 중에는 우리들도 포함이 될 것이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1] 2025년 3월 30일 가톨릭 부산 주보 강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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