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3일 사순 제3주일 아치에스 행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2천여년 전, 유다라는 나라의 자그마한 마을 나자렛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그녀는 14-16살 정도의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 산달이 차서 아기 낳고, 이제 겨우 몸을 풀고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어머니가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산바라지를 도와줄 시어머니도 친정 어머니도 없었다. 오직 나이 많은 남편만이 그를 도와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어려운 처지에 그래도 누군가가 손이라도 꼭 잡아주며, « 그동안 애썼다 »라는 말이라도 해주면 참 좋으련만, 성전에서 만난 예언자 시므온은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예언을 한다: « 당신의 영혼은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을 겁니다 ».
루카 복음서는 마리아,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가 ‘한나’ 라는 여자 예언자도 만났다고 증언한다. 이어서, 루카 복음서에는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아들 예수를 성전에서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4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의 유아시절과 소년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루카 복음사가는 이 이야기들을 이렇게 끝맺는다: «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아들이 서른이 다 되도록 장가도 가지 않고, 열둘이나 되는 장정들을 모아 제자단을 꾸리고는, 온 데를 돌아다니니, 사람들로부터 « 당신 아들이 미쳤나 봅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지깽이 들고 득달같이 달려나가던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친척들을 데리고 아들을 찾으러 백방으로 헤매었을 어머니 마리아, 그러나 아들로부터 들은 매정한 말 한마디, «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 이 말 한마디에 또다시 어머니 마리아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 모든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셨을 것이다.
그 아들이 로마군인들에게 붙잡히고, 십자가 사형을 언도 받고,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 아들 손 한번 제대로 못 잡아주고, 군중들 틈에서 겨우 서로 눈빛만 교환했을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했을 때, 어머니는 실신을 하고도 남았을 지경이었겠지만, 마리아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늘 아들 곁에서, 아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마음 속에 간직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간직된 어머니의 그 마음이야말로 고통을 견뎌내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 우리로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겠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마음 속에 켜켜이 간직했기에, 그 고통을 견뎌내었고, 켜켜이 쌓인 그 마음, 그 마음 안에는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고 있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성모님만 고통 속에서도 은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성모님만 그런 특혜를 받은 것일까? 우리들 안에서도 발견되는 현상 아닐까? 과거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이들, 어떻게 그 어려운 때를 견뎌냈는지도 모를 만큼, 괴로웠던 시절을 겪었던 이들이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사실은 자기가 잘나서 그 시절을 겪어냈던 것이 아니요, 자기 안에 그 힘듦을 겪어낼 만한 내공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를 붙잡아주고, 자기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고, 생판 알지 못했던 ‘타인’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그 누군가가 바로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였음을 고백할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요즈음 여기저기서 힘들다, 괴롭다고 난리다. 언제 어려움이, 힘듦이, 고통이 우리 삶을 찾아 오느냐, 그것들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 삶에 들이 닥쳤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 마음에 따라 시련의 무게도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그 마음은 하느님 은총이 머무는 자리다. 하느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리아, 고통 한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자신이 겪은 바를 켜켜이 마음 속에 간직하셨던 마리아는 마침내 우리들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함께 하심을 의심치 않으셨기에, 참으로 복되신 분이 어머니 마리아다. 우리들의 어머니 마리아는 곤경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미소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내가 견뎌냈으니, 너희들도 분명 이 어려운 때를 잘 견뎌낼 거다.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너희들을 꼭 지켜 주실 거다. 나와 함께,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이 어려운 때를 잘 견뎌내 보자꾸나».
이제, 성모님 앞에서 선서를 하며, 성모님께 다시 한번 우리의 효성을 고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