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3일 사순 제3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이런 일 겪어본 사람 없는가? 집안에 어른이 난데없이, 돌아가신 조상들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이야기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면, 주위 친척들이 나서서 어디 함부로 조상들의 묘를 옮기느냐고 극구 반대를 하고, 결국은 유야무야되고 말거나, 어른이 똥고집이면, 마침내는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기도 한다. 잘 풀리면 내 덕이고 잘못 풀리면 조상 탓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다. 그러나 조상 탓, 부모 탓 하는 자식들치고 잘 풀리는 인생도 드문 법이다. 얼마나 못났으면 죽은 사람 탓으로 산목숨을 헛되이 쓴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런 생각에 파묻혀 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신앙인들 가운데도 이런 이들이 꼭 있다. 평소에 신앙생활도 그다지 열심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뭔 일만 생기면 <하느님 탓>하고 나선다. ‘하느님이 어떻게 나에게 그러실 수 있나? 왜 나한테만, 내 가족들만 이런 불행이 생길 수 있나?’ 아무 일 없이 지낼 때는 하느님 찾지도 않더니 발등에 불 떨어지고 나면 마치 하느님이 원흉인 냥, 냉담으로 돌입하는 이들이 있다.
하느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아, 사람들아, 내가 언제 너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그랬나...너희들이 좋아서 죄짓고 너희들이 꼭 불행으로 빠질 짓거리들은 빼놓지 않고 살더니만 그 당연한 사필귀정의 대가가 너희에게 돌아오면 그제서야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어디 저 혼자 살겠다고 팩 돌아서놓고는 나보고 어떡하라고?” 하느님도 억울하시겠다.
고통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유가 있고 까닭이 있는 고통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무력한 고통도 존재한다. 설명되지 않는 아픔들이 있고 죽음들도 있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는 아픔, 죽음도 있다. 우리는 그런 아픔, 그런 죽음을 2014년 세월호에서, 그리고 지난 2022년 이태원에서 두 눈 버젓이 뜨고 다 지켜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면 입 다문다. 나는 아니고 내 가족은 아니니까, 사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누가 억울한 일이 있다고 데모를 하고 농성을 해도 왜 차 막히게 하고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한 이의 사연보다는 그들 때문에 늦게 되는 지하철이, 버스가 더 안타까워 손가락질 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이다. 그러나 막상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면 난리가 난다.
사실, 이 시대에 벌어지는 억울한 죽음과 이유 없이 당해야만 하는 고통들 병고와 눈물들,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느님의 준엄한 표징들이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무죄한 이들을 죽이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살리시는 분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람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요 사람이 사람에게 ‘짐승 짓’을 하는 것도 사람이다.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요 억울하게 만들고 서럽게 만들고 가난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사람이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러고서도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자기는 죄 없다 큰 소리 치고 산다.
뻔뻔하기 짝이 없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감히 나는 죄 없다 하겠는가? 사람이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어야 할 것인데, ‘뭐 나만 그런가...’ 하며 갈수록 모질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상을 향해 하느님은 목놓아 애타게 절규한다. “제발, 회개하시오”라고 말이다. 당신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을 허용하기에 이르기까지 회개를 요청하신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그 때 잘라버리십시오.”.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와 기다림이 감추어져 있는 대목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구원의 집행유예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집행이 유예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미 유죄 선고는 받았으나 일정기간 무사히 넘기면 선고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집행유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그 집행유예 기간인 오늘,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다. 부지런히 거름을 먹고 열매를 맺는 일,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일어서자. 움직이자. 백날 천날 마음으로만 ‘언젠가는 회개해야지, 회개해야지’ 하고, 입으로만 통회하지 말자. 그래, 오늘 사순 제3주일, 오늘은 회개하는 날, 회개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날, 하느님과 화해하는 날, 가족과 이웃과 화해하는 날이다. 회개하고 뉘우치기만 하면 언제나 용서하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자. 그리고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면 받아줄 줄 아는 사람,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 보자.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