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1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복음의 포도원 사건의 비유 이야기에 나온다. 불의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불의한 것을 바로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면, 사랑에 대한 반역과 배신의 역사다. 이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 이 역사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오늘 복음의 포도원 사건 비유가 바로 감추고 싶고, 미화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피하고 싶은 자기네들의 역사임을 잘 알고 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새로운 바람을 자신들이 가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새 바람을 잠재우고 새 물의 유입을 차단하려고만 했고, 급기야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까지도 꾸며서 실제로 예수를 죽여 버렸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사람들 입을 막으면, 돌들이 일어나 외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오늘 복음의 비유 이야기는 한낯 반유대교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초대교회의 유대인들에 대한 볼멘소리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와 적어도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일어난 먼 과거의 역사에 대한 비유도 아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의 종들은 예언자들이다. 소작인들로부터 매질 당하고,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던 종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거짓을 폭로하고, 하느님께 불성실했던 고관대작들을 고발하고, 그들의 영향 아래에서 무엇이 똥인지, 무엇이 된장인지도 구별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나대면 다치니까, 모난 돌이 정맞는 법이니까, 자기네들의 삶, 자기네 이웃들과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 받은 이들의 삶, 자기네 나라의 삶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백성을 꾸짖었다. 그들은 진실을 밝히려 했던 이들이었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생명,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삶이 가지는 존엄함은 그 어떤 것에도 훼손되어서도 안되고, 짓밟혀서도 안 된다는 것을 천명했던 하느님의 사람들이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런 예언자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천년의 교회의 역사 속에서 교회의 쇄신을 부르짖었던 사람들,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교회, 기득권자들 편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교회로 쇄신되기를 갈망했던 사람들도 그들과 동급의 사람들이었다. 교회의 쇄신을 위해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이들, 권력의 달콤함을 누리고 있던 이들과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들, 하느님의 일을 하던 이들도 대부분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의 종들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을 오늘날에도 걸어가고 있는 이들은 교회 안에 여전히 있다. 그리고 교회 밖에도 이 나라 이 땅에 불어 닥친 혼돈의 현실을 바로 잡으려 애쓰는 이들의 정의를 향한 발걸음도 있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분은 분명 하느님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그러한 은총은 반드시 하느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전달된다. 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람들이다.
오늘 하루 정의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을 위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기도의 시간들을 마련해 봄이 어떠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