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9일 수요일 성 요셉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부인 성요셉 대축일이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보태 주시다. 하느님께서 얹어주시다. 하느님께서 덧붙이시다.’라는 뜻이다.

     요셉이라는 이름을 묵상하고, 이 이름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보려고,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이제민 신부님의『제3의 인생』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신부님의 책에서 요셉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내었다. 오늘 강론은 이제민 신부님의 책 pp.105-106 요셉” 편 나오는 글들을 주로 옮기고, 몇 마디 나의 말을 덧붙였다. ‘수동의 영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여러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잘나야 잘 사는 것 같은 세상에, 못나야 그래야 하느님이 잘 사실 수 있다고, 하느님 앞에서의 수동의 삶을 권유하는 책이다. 

     
남자로서 요셉을 생각하면 세상에 이다지도 ‘안된’ 남자가 있을까 싶다. 기껏해야 ‘마리아의 남편’ 정도로 불리고 친아버지도 아닌 ‘양아버지’라는 딱지를 지금껏 달고 있다. 부부의 정도 나누지 못한 채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목공 일을 한 일꾼 정도로 인정받을 따름이다. 평생을 마리아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인생이 바로 요셉이다. 심지어 마태오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족보에 나오는 요셉의 자리도 그렇다. 마태 1,16을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증언한다. 족보에서 조차도 그 당시 제대로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여성의 남편으로, 그것도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 족보상으로도 그는 별로 대단한 일을 한 적도 없고,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한 남자로 밖에는 자리하지 못한다. 

     완전히 들러리 인생이다. 성가정의 가장이라고는 하지만 순전히 예수와 마리아 때문에 그에게 ‘가장(家長)’이라는 한 꼭지를 쥐어 준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면서도 남편이 아니요, 아버지면서도 아버지가 아니요, 자식이면서도 자식이 아닌 이들로 구성된 이상한 가정의 가장이 된 요셉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참으로 무능해 보이고, 빛도 폼도 나지 않는 들러리 인생을 두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요셉을 참 복된 인생이었노라고 고백하는 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 아닐까? 서로가 주인 행세하려 하고 서로가 높아지려 하는 이 세상에서 요셉은 대단히 두드러지는 영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남자의 힘으로 결정되고 지배되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자의 힘이나 권위를 한번도 내세우지 않고 모든 영광과 명예와 찬사를 아들과 마리아에게 넘겨주고 뒤로 물러난 요셉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성령의 인간, 힘과 뻣뻣함을 완전히 죽여낸 하느님의 사람을 발견한다. 

      갈수록 유력해지려 하고, 유능해지려고 하는 세상 아닌가? 스펙 높아야 그래도 대기업에 들어가고, 돈만 잘 버는 게 아니라, 재테크도 잘 해야 하고, 펀드나, 주식도 좀 만질 줄 알아야 하고, 땅도 볼 줄 알고, 상권이 어디에 형성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알기 위해서 윗줄과도 연계가 있어야 유능하단 소리 듣는 세상이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몇 십억의 재산이라도 남겨 주든지, 땅이라도 몇 천 평, 아니, 몇 만평 남겨 놓고 죽어야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고, 아버지라는 소리도 듣는 세상이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내가 나서야 잘되는 것이고 내 아니면 안 되는 세상 아닌가? 힘 있는 것이 좋고 능력 있는 것이 좋고, 잘 한다 칭찬 받고 인정받아야 살아도 사는 것 같은데, 그래서 열심히 해놓고도 잘 한다 인정받지 못하면 살아도 죽을 맛인데, 내가 잘나 그런 것이고 네가 못나 이 지경이라고 따지고 있는 통에 온통 사는 일이 참 퍽퍽해지는데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어이 내려놓지 못하는 이 자존을 고스란히 내려놓은 인물, 요셉이 참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마리아가 그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내려놓고 가장 무능한 존재로서 아멘, 이라 응답했기에 예수를 잉태할 수 있었듯이 요셉 또한 마찬가지였다. 요셉 역시 성령에 의해 남자로서의 모든 힘을 거세시킨다. 내려놓는다. 가부장적인 모든 권위와 가장으로서의 힘, 남자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요셉은 철저하게 마리아와 예수의 수호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침묵과 겸손으로 말이다. 자기의 힘을 죽이고 말없이 마리아의 뒷전으로 물러난 요셉의 그 무력함 속에 드디어 세상을 구원할 성령의 능력이 시작된다.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여 어머니가 되었다면, 성령의 힘으로 요셉을 아버지가 되게 했고,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게 했다. 

     
잘난 인간의 힘으로 세상은 구원되는 것이 아니다. 못난 인간, 무력하고 무능한 인간의 전적인 내맡김을 통해, 구원은 결국 내가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 비로소 성취된다. 못난 나를 통하여 그분께서 이루시고 그분께서 일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참된 영성은 사람의 힘, 남자의 힘을 꺾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지소서”하고 자신을 내어 맡기는 데서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들어간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세상에서 무능하고 왜소하고 ‘안된’ 요셉의 영성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의 ‘숨은’ 영성을 밝혀주는 선명한 빛이 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권력과 권위와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력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다시금 예수를 탄생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 필요하다. 요셉의 무력을 살아낼 수 있는 그 영성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무릎 꿇으며, 내 피 한 방울 안 튀긴 생명을 고스란히 당신의 생명으로 끌어안겠노라고, 그를 살리기 위해 나의 전 인생이 죽고 사라져도 기어이 이 삶을 선택하겠노라는 무력함의 포용이 필요하다. 

   
오늘 요셉 대축일을 맞으며, 이제민 신부님의 책에 나오는 기도문처럼, 이렇게 기도해본다. “주님, 당신의 비천한 출생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 당신의 가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저의 힘을 꺾고 성령의 힘으로 살도록 도와두소서. 주님, 저를 성령의 인간, 성령의 힘으로 사는 인간이 되게 하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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