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1992년 신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영성지도 신부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나는 지난 1980년대에 우리 김해성당 주임신부님이시기도 했던 석찬귀 스테파노 신부님을 영성지도 신부님으로 선택했다. 내가 그분을 영성지도 신부님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그분의 강의록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분은 매년마다 강의록을 새롭게 쓰셨다. 한 해 쓰고 나서, 다음해에도 똑같은 강의록을 사용하셔도 무방할 텐데, 강의록 내용을 좀더 보완을 하시든지, 첨삭을 하셔도 될 텐데, 굳이 연말이 되면, 당신께서 한 해 동안 사용하신 강의록을 일부러 다 찢어 버리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이듯이, 당신 스스로도 게을러질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고가 경직되고, 썩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늘 사순 제2 주일, 제1독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던 아브람, 나중에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는 아브람에게 «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땅으로 가라 » 명령하신 야훼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브람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 떠남 »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셨던 « 떠남 »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자기가 살아온 과거와 삶의 토대와의 완전한 단절, 자기가 계획해왔던 미래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떠남이 자기 양들에게 먹일  좋은 풀과 물을 찾아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면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떠남은 자신의 소유욕과 이기심과 안일함에서 떠나라는 것이요,   공동체와 연대하기 위한 떠남이었다. 

     끊임없이 현재의 안일함을 걷어 차버리고 많은 사람의 행복과 희망을 위해 떠나는 나그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서도 발견된다.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깃들 둥지가 있는데, 당신 자신은 머리 뉘일 곳조차 없다고 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몸소 찾아 나서는 나그네셨다. 

    오늘 복음은  나그네 길에서 있었던  특별한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산(타볼산으로 알려져 있다)으로 올라가셔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신다. 이에, 베드로는 황홀함에 취해서는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로, 떠나온 길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산에 머물자고 한다.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에게 유혹이었다. 안일함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알뜰한 유혹을 기어이 물리치셨다. 

     
우리들도 참으로 달콤한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삶의 외적인 백그라운드를 좀더 풍성하게 하고, 돈 좀 더 만지고, 좀 더 윗자리에 빨리 오르기 위해서, 내 앞에 놓여질 수 있는 좀 더 손쉬운 방법들, 일상화된 악의 조각들, 아주 달콤해 보이고, 부드러워 보이는 유혹의 손짓들에 노출될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라는 것이 있다. 이왕 기도하는 거, 좀더 효과적인 기도문이나 기도서를 찾아서 하려는 유혹, 금육재 지키자고 하니, 고기 안 먹는 대신 회 먹자고 하는 유혹들을 비롯해서,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행복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늘 핑계와 불평거리를 찾으려는 유혹, 이웃 사랑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영성만을 강조하려는 유혹, 기도한답시고, 선교나 사회참여활동은 하지 않으려는 유혹, 성당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나 하고, 거룩하게 미사나 참례하고, 교회는 세상에서 휴식처가 되고 쉼터가 되면 그만이지, 세상일에 왜 간섭하느냐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고, 교회가 그러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려는 유혹도 있다. 세상의 논리, 힘의 논리, 돈의 논리, 권력의 논리를 교회 안에다 버젓이 적용해, 교회나 세상이나 돌아가는 건 똑같지 않느냐고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려는 유혹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중립을 지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거나, 아예 인간의 고통에 소금을 문질러 그 고통을 배가 시켜 버리거나, 죽은 양보다는 살아 있는 양을 더 보살펴야 하지 않느냐는 그럴 듯한 논리를 펴 대면서,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려는 유혹도 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아브라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언제나 안주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유혹을 받지 않는 법은 없다. 신앙인도 유혹을 받고,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애써 조심하고, 혹 유혹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얼른 일어 나려고 온갖 애를 쓴다. 유혹을 이겨내는 길, 유혹을 이겨내는 힘, 그 힘은 바로 우리들의 주님,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들의 힘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0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7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4.12 0
»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4.12 0
378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4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4.12 0
377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3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4.12 0
376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2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4.12 0
375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12
374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10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3
373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9일 사순 제1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5
372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7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4
371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6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3
370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2
369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4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11 0
368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3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15
367 2025년 8월 이전 2025년 3월 2일 연중 제8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3
366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8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1
365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7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0
364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6일 연중 제7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1
363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5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1
362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4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3.04 0
361 2025년 8월 이전 2025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22 1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