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추위에 움츠려 있던 움들이 꽃망울을 팡팡 터트리기 시작한 봄날. 나직한 산을 병풍 삼아 누워있는 묘지 위로도 햇살이 자글자글 내리고 있었다. 저 멀리 동산에는 공원 안에 잠들어 있는 모든 이들을 예수님이 양팔 벌려 당신 품으로 불러들이는 모습이 보이고, 제2봉안당 건물 위에는 성모님이 주님께 우리들의 바람을 전구하시는 듯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계신다.
양산에 있는 천주교 하늘공원으로 갔다. 우리보다 먼저 주님 곁으로 간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제1봉안당은 수리를 하려고 건물 전체 외벽 쪽으로 비계가 설치돼 있었다. 봉안당 주변이 공사 자재로 어수선하여 마음이 걸리긴 했지만 안으로 들어갔다. 어김없이 피에타상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랑하는 아들의 주검을 안고 비애와 비통함이 가득한 성모 마리아님! 조그만 초에 불을 붙여 놓고 두 손을 모은다. “성모님, 너무 슬퍼 마시고 조금만 기다리셔요. 곧 주님이 다시 오실 테니까요.”
새로 지은 제2봉안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전, 신자들과 위령기도를 드리면서 주님께 청했다. “주님, 사순 시기에는 하늘 문이 활짝 열려있다는데 혹시나 죄를 지어 떠도는 영혼이 있다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두 주님 품에 들게 하여 주소서.”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 시기, 사제께서 강론 때 40이란 숫자가 우리 신앙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신 걸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는 40일간 비가 내려 세상이 물에 잠겼는데 이는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며,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40일을 금식하며 율법과 계명을 받았으며, 유대민족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가나안에 도착하기 전, 광야에서 40년간 방황을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기도를 한 사건은 사순 시기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한 후 승천하기까지의 기간도 40일이다.
어린 시절 전학을 간 시골학교 운동장 옆 언덕 위에는 조그만 서양식 아치형 건물이 숲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그 앞마당에서 처음 성모님을 만났다. 점심시간 잡기놀이를 하면 언덕까지 올라가 성모님 뒤에 납작 엎드려 숨었고 성모님은 그런 나를 지켜 주셨다. 어린 날 그 신비스런 공간이 근덕공소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성인이 되어서야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된 지도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신앙은 허허벌판을 헤매고 있다. 레지오 활동을 통해 꾸리아, 꼬미시움, 아치에스 행사에 참여하고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거쳤어도, 냉담자를 권면하고 늘 기도 속에 있어도 나의 믿음은 아직도 미미하다.
하늘공원을 돌아 나오면서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집회 38,22)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 조금은 성숙된 참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믿음이 깊지 못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날들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가 더욱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이 거칠고 스산한 황야의 어둠을 밝히시려/ 길이신 이여 오소서/ 아멘.
(이해인 ‘길이신 이여 오소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