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힌 이들

가톨릭부산 2025.03.26 10:17 조회 수 : 19

호수 2863호 2025. 3. 30. 
글쓴이 송현 신부 

감옥에 갇힌 이들
 
 
송현 로마노 신부
부산가정성당 주임 겸 가정사목국장
 
   영국 작가 로이드 존스(D. M. Lloyd-Jones; 1899~1981)는 사람들이 스스로 여섯 개의 감옥을 만들어 그 안에 산다고 했습니다. 첫째, 자신의 모습이 최고인 ‘자아도취의 감옥’, 둘째,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들춰내는 ‘비방의 감옥’, 셋째, 남이 잘되는 게 달갑잖은 ‘증오의 감옥’, 넷째,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선망의 감옥’, 다섯째, 본인이 활동한 지난날을 황금시대로 여기는 ‘향수의 감옥’, 여섯째,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는 ‘근심의 감옥’입니다. 이러한 여섯 감옥에 자신을 가두어 옥죄는 건 ‘자만과 위선의 자물쇠’입니다.
 
   오늘 복음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H. R. Rembrandt)의 작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탕자의 비유’입니다. 등장인물인 아버지는 하느님을, 작은아들은 회개하는 죄인을, 그리고 큰아들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를 비유합니다. 큰아들은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착한 아들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작은아들이나 그를 환대하는 아버지에게 울분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큰아들의 모습은 세리와 죄인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를 빼닮았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신실하고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신심과 성실성에 확신이 있고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다고 자부하는 어느 순간, ‘자아도취의 감옥’에 갇힙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굳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것 없이도 올바르게 살면서 구원을 얻을 것으로 자만합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하면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대신합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가로막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아도취의 감옥’에 갇힌 이들은 더 이상 주님께 다가설 수 없고 심지어 다가가려는 사람마저 책잡고 방해합니다. 곧 ‘비방의 감옥’과 ‘증오의 감옥’에도 갇혀버립니다. 따라서 저 유명한 ‘탕자의 비유’는 죄인의 회개를 일깨우기 이전에, 그걸 훼방하고 저해하는 이들을 풍유(諷諭)하는 하느님의 경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로마 3,9 참조) 절대자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누가 주님 앞에서 의롭다고 내세울 수 있을까요? 과연 신앙이란 온갖 교만과 허세의 야망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자기 능력만을 믿고 살아가려는 ‘자만과 위선의 자물쇠’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은총과 자비를 청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알량한 정의와 어설픈 공로를 앞세웠던 복음 속 그들을 따라 여러 감옥에 감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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