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의 복음적 삶, 내세의 영원한 삶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온천성당 · 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몇 년 전부터 17세기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알폰소 바뇨니(1568-1640)가 저술한 한문서학서 『사말론四末論』을 번역하고 있다. 한문서학서는 명나라 말부터 서양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전교활동을 전개하면서 천주교 교리와 서양 문명에 관한 지식을 담아 한문으로 저술한 책이다. 이러한 한문서학서들이 조선에 전래되었고, 우리 신앙 선조들은 이들 서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이해하고 신앙에까지 이르게 되어 한국천주교회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사말론은 천주교의 사말 교리를 적어 놓은 것이다. 요리문답으로 교리를 배운 옛 신자들은 ‘사말’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생소할 것이다. 사말은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네 가지의 마지막 문제인 ‘죽음’, ‘심판’, ‘지옥’, ‘천국’을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사후에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하며, 상선벌악(賞善罰惡)에 따라 선하게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악하게 산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는 교리이다.
이러한 사말교리는 박해시대를 살아간 한국천주교회 설립 초기의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잘 알고 있듯이 조선에 천주교가 수용된 이후 100여 년간 박해가 이어져 수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순교자들은 형장으로 끌려 나갈 때 밝은 마음으로 ‘가세 가세 천당가세.’라든지 ‘지금 죽으면 바로 천당 간다.’라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였다고 한다. 사말교리와 가르침으로 신심을 다지고 순교 영성을 키운 이들이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다.
사말은 죽음에 대한 천주교 교리를 논의하지만, 역설적으로 내세의 행복과 평안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삶을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일러준다. 천주교 신자들의 죽음을 선종(善終)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 역시 『선생복종정로善生福終正路』라는 한문서학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착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사말을 자주 묵상할 수 있다면 ‘선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집회 7,36)는 성경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사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