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861호 2025. 3. 16. 
글쓴이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올해는 교회의 희년 정신으로 모든 창조세계가 본래의 자리, 생명의 자리로 돌아가는 은총의 해이자, 『찬미받으소서』 반포 1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입니다. 전 세계에서 전쟁이 멈추고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의 희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삶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자비의 희년, 공장 옥상에서 고공 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당당하게 돌아가는 희망의 희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보다 자연 생태계가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다시금 노래하는 희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릴 적, 저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동네 반찬가게에서 콩나물과 두부를 사오거나, 기름집에서 식용유를 자주 사오곤 했습니다. 그 때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흔하지 않아, 콩나물과 두부는 양푼에 담아오고, 식용유는 병에 받아왔습니다. 포장되지 않은 식재료를 손수 담아 오던 그때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해하고 순수한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에 들린 양푼은 먼지가 묻어도 물로 헹구기만 하면 다시 깨끗해졌고, 물건들은 쉽게 버려지지 않고 오래도록 쓰였습니다. 쓰레기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며 일상의 일부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비닐과 플라스틱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새로웠다 해도 오늘은 볼품없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시대,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것에 현혹될 이 시대의 소비문화 속에서는 순환이라는 개념 자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우리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대담하고 단호한 행동이 새로운 희망의 닻을 내릴 수 있도록, ‘생태적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순례자’로 길을 떠납시다. 무한성장을 향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로부터 벗어나 ‘멈춤’과 ‘정지’로 숨을 고릅시다. 그리고 모든 창조세계와 함께 창조된 우리의 첫 자리로 돌아가 평온한 조화를 되찾고 우리의 생활양식과 이상에 대하여 성찰합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정다운 마음가짐’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셨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관대한 사람들은 모든 생명에게도 관대합니다. 부드러움이 넘치는 돌봄의 정신을 가진 이는 모든 창조세계를 향해서도 돌봄의 마음을 가집니다. 내 이웃(지구)의 안부를 묻는 정다운 마음가짐은,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프고,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마음의 파동을 알아차리는 생태적 감수성일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를 둘러싼 것들 안에 살아계신 창조주를 찾아가는 이 여정이 우리 안에서 시작되기를 바라시면서 그 길을 기쁘게 노래하며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과 우리의 연결성을 찾아 떠나는 희망의 순례길에서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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