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9일 사순 제1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셨다. 이 40일은 당신의 공생활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는 수련의 시간이요, 당신의 임무 수행, 곧, 아버지께로부터 사랑 받기 위한 삶을 살고, 그분 마음에 들기 위한 삶을 준비하기 위한 내적인 투쟁의 시간이며, 당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에서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해도 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선별하기 위한 시간, 그릇된 방책들과 벌이는 싸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오늘 복음의 유혹 이야기는 예수께서 당신의 사명을 따라 걷는 인생길에서 벌이셨던 싸움 전체를 집약한 것이다. 

     
유혹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을 것을 많이 확보한 사람일수록 힘이 있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에서는 돈이 신의 경지에 이른지가 이미 오래 전이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으로 사람을 만들고, 돈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내 사람 만드는 데는 돈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돈의 유혹은 아주 강렬하다. « 사흘 굶어 담 뛰어 넘지 않는 놈 없다 »고 했다. 배고픈 이에게 빵이란 최소한의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세상에 굶주림보다 비극적이고,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과 인류의 구원자에 대한 믿음을 거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세상의 구원자라면, 최소한 세상에 먹을 거리를 주어야 하고, 또 당연히 주어야 한다고 세상은 말한다. 전 세계를 먹여 살리는 문제, 가난과 기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야 말로 구원을 가늠해 주는 으뜸가는 척도처럼 보인다. 이 척도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가 자칭 구원자라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이렇게 비판하는 이들의 대표 케이스가 바로 맑스주의이다. 맑스주의는 모든 사람의 굶주림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광야의 돌들이 빵이 되도록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본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악마의 함정이 있다. 돈이라는 것은, 빵이라는 것은 소유의 한계가 없다는 마력을 지닌다. 마력은 악마로부터 나온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돈에서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빵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그 의식이 아닌 악마의 유혹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바로 물신숭배요, 맘몬 숭배, 우상숭배다. 

     예수께서 겪으셨던 유혹들은 결국 하느님이 없는 듯 살라는 것이었다.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능력을 탐하고, 부귀영화를 꿈꾸는 일, 이러한 일들은 우리네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빵, 권력, 능력, 부귀영화, 이런 것들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것이 유혹의 본질이다. 그리고 재물, 능력, 부귀영화,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느님을 저버리는 행위다. 신앙은 그런 것들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기 욕심 채우기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죄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는 유혹들을 물리치기 위해 번민하고, 때로는 머리를 쥐어 뜯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신앙의 길은 쉬운 길이 결코 아니다. 어려운 길이다. 가시밭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다. 우리가 그 길을 걸으면, 필경 세상은 우리를 보고, 바보라고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조롱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부활을 알지 못한다. 부활의 영광을 알지 못한다.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 길은 가슴 뿌듯함과 당당함을 가져다 주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정의와 사랑과 희망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하느님의 은총을 만끽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이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사순 시기라고 하면 흔히 회개하고, 보속하며, 조신하게 보내는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하는 고통스럽지만, 인내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순 시기는 그런 때만은 아니다. 사순 시기는 부활을 기다리는 기쁨의 기간이다. 사순시기,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그러나 부활로 나아가는 길, 이 길을 함께 걷기 위해, 그 길 위에서 서로 서로 기대면서 서로 서로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여기 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부활을 희망하고,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순 시기, 우리 모두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기쁘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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