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교회의 많은 교부들은 교회를 배에 비유했다. 선장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모두 선원이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세상의 종말까지 이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한다. 이 항해의 한 때로 우리는 오늘 사순시기라는 한 때를 만나게 되었다. 사순 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일련의 지나감, 바로 빠스카를 준비하는 40일 동안의 긴 평일이다. 항해를 나가는 선원들이 출항식을 하듯, 우리는 오늘 재의 예식을 하면서, 사순시기를 시작한다.

     지난해 성지 주일에 나눠 가졌던 성지 가지를 태운 재를 이제 곧 우리는 우리 머리 위에 얹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 한가운데에 이번 사순시기만큼은 이것만은 꼭 실천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을 안고 이 사순시기를 시작하려 할 것이다. 마치 출항을 할 때의 선원들처럼 말이다. 출항 시, 선원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마스코트를 꼭 챙긴다. 마스코트는 자기를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어떤 상징물로 여기지만, 사실 마스코트는 자신을 수호해주는 물건이다. 그것만 있으면, 사나운 파도도 이겨내고, 무서운 풍랑도 헤쳐 나갈 것이라고 여기듯이, 이번 사순시기만큼은 꼭 한가지만이라도 해내겠다는 심정으로 그 다짐한 바를 꼬옥 붙들려 할 것이다. 

     사순 시기의 첫날인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는다. 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드러내준다. 재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먼지다. 이 재는 인간의 기원의 비참함과 현재의 인간의 나약함과 미래의 우리 육신의 운명을 드러낸다. 이 재를 우리의 머리에 얹는 것은 우리 자신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에 따른 하느님의 은총의 문도 그만큼 열린다. 인간은 먼지에서 왔다가 흙먼지로 되돌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인 우리는 단순히 흙먼지로만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모두가 구원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오늘 제 2독서의 바로 앞 구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 과연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저들에게 그 범법행위를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분입니다 »라고 말한다. 사도를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전해지는 그 « 화해의 말씀 »이란 «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라는 사실이다. 

     한때 가톨릭 교회가 소홀히 했고, 마르틴 루터가 그렇게 강조했던 말씀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 어린양을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아드님을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다는 말이다. 죄가 없는데 가짜로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무죄한 분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그 죄값을 치르게 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무죄한 분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 앞에서 죄인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하느님께서 이렇게나 잔혹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셨을까? 게다가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죄를 뒤집어 쓰셨을까? 그 모든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바로 « 우리를 위해서 »이다.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그렇게 잔혹한 행동을 하셨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는 바보처럼 죽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이다. 바로 여러분과 이 죄 많은 나를 위하여 우주 역사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신 분이다.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와 사랑이 그 행위 안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우직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기를 권고한다. 우리의 뇌 속에, 깊이 새겨 놓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보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보시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 이 말씀으로 오늘 우리가 지내는 재의 수요일과 사순 시기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의 머리에 덮은 재는 우리의 본질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더 이상 흙이 아닌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오늘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이끌 수 있는 가장 기쁜 날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흙에서 왔지만, 그리고 겉으로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결코 흙으로만 돌아가지 않고 흙이 아닌 자로서의 영원한 삶이 오늘, 우리들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 희망을 우리 가슴에 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은총으로 향하는 40일간의 항해의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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