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4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내일이면 재의 수요일, 2025년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 전날,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카니발 축제가 열린다. 사순시기 내내 고기도 제대로 못 먹고, 흥겹게 지내지도 못하니, 사순시기 시작 전날에 실컷 먹고 마시자는 축제다. 아주 비그리스도교적인 축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시기를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맞이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이정표다. 힘있는 사람들,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놓기보다는 과거를 미화하려 하거나 왜곡하려 하거나, 은폐하려 하고, 정의와 평등보다는 차별과 불평등을 더 선호한다.
정의와 평화, 사랑과 생명을 부르짖는 소리들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골머리를 앓게 한다. 그들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면 새벽이 오지 않을 줄 안다. 그들은 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은폐, 조작, 중상모략 이러한 짓들을 해대기 시작하면,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은 성공한 그들을 닮거나, 그들로부터 콩고물, 팥고물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그들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숨겼다는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 없이 수많은 거짓을 재생산해 내어야 하고, 은폐해야 하고, 그러한 재생산은 결국 분열을 일으키게 하고, 무질서를 초래하고, 파탄을 일으키게 한다.
거짓, 불의, 중상모략, 권모술수와 같은 « 세상의 죄 »로 인해 누리게 되는 힘의 혜택, 권력의 혜택, 돈의 혜택보다는, 진리를 택하는 삶, 하느님을 택하는 삶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처럼, «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리는 삶 » 이요, 현세에서 박해도 받는 삶»이다.
많은 신자들이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리는 삶의 모범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인도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를 꼽는다. 그들의 가난한 삶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이 거룩함으로 내비치는 세상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2% 부족하게 말한다. 그들의 가난한 삶 자체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신의 삶 자체가 박해를 받았던 삶은 아니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칭송하는 이들이 부족한 2%라는 것은 가난을 사회의 구조적인 악으로 알아보고, 가난한 이들의 궁핍한 삶을 악의 상태로 알아보는 식견과 그 가난을 없애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을 부르짖었던 그들의 속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정의의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 없는 이들을 편애하는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분을 따르고 닮으려 애쓰는 삶이다. 쉽지 않은 삶이다. 절대로 편안한 삶이 아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기는 하지만, 처절하게 깨어지고, 쪼개어지는 삶이다. 한마디로 십자가의 삶이다.
이런 십자가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하고 싶고, 물리치고 싶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한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이 십자가를 짊어지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주님과 함께 짊어져 보겠노라고 작정하고 작심하면, 삶이 확 달라진다. 멀리만 있을 것 같고, 우리 삶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던 하느님이 갑자기 내 옆에 계셨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성령 강림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현세에서는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지는 못하겠지만, 현세에서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나됨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삶, 그 삶에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초대하셨고, 제자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그 삶을 살았다. 한 때, 바로 그 십자가의 삶에서 도망도 쳐보았지만, 주님의 부활이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 그 삶을 살아내었다.
재의 수요일 전날인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십자가의 삶으로 초대하신다. 그 초대에 곧바로 기쁘게 응해야 할 터인데, 나 자신은 무어 그리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그 초대 앞에서 이러 저리 핑계를 대고, 차일피일 응답을 미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며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