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어느 종교든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그 종교에 입문을 한다. 그런데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종교들이 요구하는 사항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산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산 앞에서 갈등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산을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산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산 앞에서 주저 앉아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산을 넘으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산 앞에서 지금까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우리들의 주님께서는 엄청난 것, 어마어마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분의 요구가 우리 앞에 넘어가기 힘들거나, 아예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산으로 성큼 다가옴을 실감할 정도다 : « 원수를 사랑하시오 !!!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하늘에 계시는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시오 !!!» 아무래도 오늘 말씀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차원에서 본다면,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고, 힘이 딸리는데, 오른 뺨을 치는 사람에게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고 ?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까지 하라고 ?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예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긴 하셨지만, 정작 예수께서도 당신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실천하셨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른 뺨을 치는 사람에게 다른 뺨마저 돌려 대라고 하셨지만, 예수께서 붙잡혀서 대사제 카야파 앞으로 끌려 가셨을 때, 카야파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의 뺨을 치면서, «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 » 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다른 쪽 뺨을 내미신 것이 아니라, «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 »라고 하셨다 (요한 18, 29-23 참조).

     
당신도 못 지킬 것을 우리더러 하라는 것인가 ?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과 우리들 보통의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감싸 주고, 무조건 이해해주고, 무조건 받아 들여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정의에 입각한 사랑이다. 불의한 것, 부조리한 것, 잘못된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나에게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끼치게 했는데, 그를 마냥 받아 들이고, 그를 마냥 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식이 잘못된 생각이나 말을 하거나, 잘못된 길을 걸으려고 하는 데,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 자녀의 자유를 존중해서,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내버려 두는 것이 사랑인가 ?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비록 그 원수가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그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처럼, 당한 그대로 앙갚음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너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나를 못 살게 굴었지만, 나를 악으로 대했지만, 나는 너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 특히 힘있고, 돈 많고, 능력 많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려는 신앙인들을 두고, 찌질이의 변명, 힘 없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라고 빈정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 빈정거림 뒤에 그들에게 놓여 있는 것이 과연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나 우러러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게나 만사 제쳐 놓고 추구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고, 그렇게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기도다. « 주님, 저는 이러 저러한 선행을 해서 완전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 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 주님, 제가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저는 완전해지지 못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 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오직 겸손한 이만이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겸손한 이만이 그 산을 넘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마음만 먹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마음 먹은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명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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