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1일 금요일 김영애 헬레나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아직은 겨울이긴 하지만, 이내 한 두 주간만 지나면 곧 봄소식이 사방천지에 전해질 것이다. 지난 2014년 이후로 봄이 올 무렵이면 나는 조향미라는 시인이 쓴 상림의 봄이라는 시를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어 놓곤 한다. 88년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 하느님께로 되돌아 가는 헬레나 자매님의 장례미사 강론을 준비하면서 조향미 시인의 상림의 봄이 퍼뜩 떠올랐다. 
 

상림의 봄
 

          함양 상림을 지날 때는 언제나 겨울

          잿빛 가지들만 보고 지나쳤다

                       그 오랜 숲은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길가 벚나무들 방글방글 꽃피울 때도

          숲은 멀뚱하니 바라만 보았다
 

          또 봄이야 우린 이제 지겨워

          늙은 나무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보름 만에 다시 상림을 지났다

          아니, 지나지 못하고 거기 우뚝 섰다
 

          아, 천년 묵은 그 숲이 첫날처럼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시커먼 고목 어디에 그렇게 연한 피를 숨겼는지

          병아리 부리 같은 새잎들이 뾰족뾰족 각질을 뚫고 나왔다
 

          작은 물방울 같은 것이 톡톡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온 숲에서 달콤한, 솜털 뽀얀 아가 냄새가 났다
 

          봄바람은 요람인듯 가지를 흔들고

          새잎 아가들은 연한 입술로 옹알이를 한다
 

          참,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

          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
 

          환장할 일이다

     
영원할 것 같은 내 주변의 생명 있는 모든 것이 하나씩, 둘씩 사라질 때 우리 마음에는 마치 총 맞은 것처럼 구멍이 생기고 여백이 생긴다. 이 구멍들과 여백들이 생겨날 때마다그리고 그 구멍들과 여백들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쓸쓸함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바로 그 구멍과 여백을 메우려 생명은 기지개를 켜댄다. 상림의 봄이라는 시는 나에게 생명이 얼마나 모순이면서도 찬란한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아주 살며시 그 생명의 원천이 나를 환장케 할 만큼 놀라우신 하느님이심도 은근히 알려준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생겨나는 구멍들과 여백들을 메워 보려 주님을 찾고,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다. 헬레나 자매님도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힘겨움을 위로 받으며, 자신을 응원해주고 격려해 줄 주님, 그래서 당신 삶 속에 생겨났던 구멍들과 여백들을 메워 줄 주님을 찾기 위해 세례를 받으셨고 죽기까지 신앙인으로 사셨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신 헬레나 자매님은 가족을 사랑하여 많은 것을 희생하신 강한 여성이셨을 것이고, 기도의 힘을 믿고 사신 거룩한 어머니이셨을 것이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신 온유한 신앙인이셨을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잠드신 자매님을 생각하며 황망해할 유가족의 슬픔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 이 지상의 그 어느 것도,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평안한 안식을 주실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고인과 잠시 떨어져 있겠지만, 삶과 죽음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부활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며 구세주로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해 온 당신의 딸, 헬레나의 손을 잡고 천국문을 열어, 천사들과 하늘나라 성인들과 한 식탁에 앉아 영원히 행복한 삶을 시작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 

      헬레나 자매님과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이루려고 하는 바로 지금, 우리가 자매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살아 계셨을 적에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비로이 용서하고, 헬레나 자매님을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의 품으로 기쁘게 돌려 보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헬레나 자매님을 따뜻이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주님, 김영애 헬레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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