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가 하느님의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젊은 사람들, 젊은 여자들을 더 좋아하면, 앞에서는 우리 신부님은 참 친교도 잘하신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겠지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눈에 비치는 그 신부는 욕을 얻어먹어도 싼 신부이다. « 저 인간 신학교에서 뭐 배웠노?, 저게 신부 맞냐? » 하면서 욕을 먹어야 한다. 신부가 하느님의 일은 게을리 하고, 대신에 세상의 것,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면, 앞에서는 우리 신부님은 힘도 좋으시고, 아는 사람도 많고, 능력도 있으시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듣겠지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눈에 비치는 그 신부는 욕을 얻어먹어도 싼 신부이다. « 자기 자리를 알아야지 », « 저럴려면 뭐하러 신부하나 ? » 하면서 욕을 얻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신부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후원회를 만들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이나, 꽃동네 같은 그럴싸한 곳을 만들면, 그 신부는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나라로부터 표창도 받고, 훈장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난과 소외와 힘없음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다름아닌 사회 제도 자체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고, 그 사회 제도 자체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려고 하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눈에 비치는 그런 신부는 참으로 신부다운 신부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욕을 얻어먹는다. 뭐라고 욕을 얻어먹느냐? « 종북 사제, 종북 주교 , 종북 구현 사제단 »이라고 욕을 얻어먹는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저 짓거리를 한다고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교구의 교구장이셨던 동 에우데 까마라 대주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은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 빨갱이라고 부른다 »
제 눈에 낯설고 불편하면 쉽게 악마로 규정해 버리는 작태는 예수님만 당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들은 화합과 용서의 힘을 주시는 성령을 거스르는 일이다. 분명히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경고하셨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고 말이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 화합과 용서를 방해하는 죄, 이런 죄만큼은 결코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경고’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