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4일 금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첫째,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둘째,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위한 권한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셋째,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이 오셨다는 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권한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바로 예수의 현존 속에 머무름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스러운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고린 13장).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에서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넣어 보면, 오늘 복음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밝혀진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제 아무리 잘 나고, 제 아무리 똑똑하고, 제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해야 할 맨 첫 번째 일은 바로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로 뽑으신 사람들을 세상의 잣대를 놓고 보면, 참으로 엉성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던 이들도 있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갈릴래아의 어부들이었고, 마태오는 세리 레위였고, 시몬이 혁명당원이었다는 것 외에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신원을 알 수도 없다. 레위 마태오는 로마 제국에 협력하여 백성들의 세금을 걷어 들였던 세리였던 것에 반해, 혁명당원 시몬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에 반기를 들었던 독립 운동가였다. 한 사람은 로마 제국의 협력자요 앞잡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로마 제국에 대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부류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이들을 모두 다 사도로 삼으셨다.
지난 1월 18일부터 한 주간 동안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생각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행동하는 바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를 수도 있고, 선호하는 사람들이나 생각들, 영성들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제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오직 하나될 수 있는 요건은 예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열두 사도들을 뽑으셨을 때에, 다양성을 염두에 두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예수는 뒷전이고, 그저 종교라는 제도 안에서 세속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생각이 다르다고, 사상이 다르다고 분열될 수는 없다. 다름이 존중되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 생활에서 더욱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의 현존 안에 머무를 때라야 ‘하느님의 도래’到來라는 복음이 제대로 선포될 수 있고, 세상의 악에 저항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을 진지하게, 깊이 묵상할수록 요즈음 시국에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오늘 복음이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참으로 어수선하고, 온갖 선과 악이 뒤엉켜 있는 이 나라 이 땅의 현실 속에서 정녕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삶의 자리를 매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