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혼인으로 맺어지는 부부 관계는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밀접하고 내밀한 관계다.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만큼 가까운 관계는 혼인밖에 없다. 그리고 이 관계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므로, 혼인 잔치는 생명의 잔치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활, 예수님의 사목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곧 ‘생명’을 향한다는 것이다.
4복음서에는 예수께서 기적들을 베푸셨다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들은 속임수나 마법 혹은 마술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도래, 하느님 나라에서의 상주, 곧 하느님과 늘 함께 하는 삶을 드러내는 표징들이다. 요한 복음 사가는 기적이라는 단어 대신에 ‘표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신앙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기적들이 다름 아닌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직시하게 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사건은 그저 2천년 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예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이뤄지는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나를 변화시키는 사건, 무지의 사람이 지혜의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사실, 이 만남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
우리는 세례를 받고 결코 죽음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인호를 받고 살아간다. 나자렛 사람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일을 그분의 뒤를 이어 하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생명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맞서, 정의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불의를 못 본 체하며,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이 세상에서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변한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세례 때에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졌다. 사제가 되게 하고, 예언자가 되게 하고, 왕 혹은 여왕이 되게 했다.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지식의 말씀이, 믿음이, 병을 고치는 은사가,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예언을 하는 은사가,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거나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은사들 위에 가장 위대한 은사인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사랑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 세례 때에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에, 우리 역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했고, 우리가 바로 ‘포도주’로 바뀐 ‘물’이었음을 체험한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바오로 사도께서는 모든 은사가 지향하는 것은 공동선이라고 했다. 생명, 사랑, 평화, 공동선 등,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치, 그러나 하느님을 드러내는 가치가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의 방향이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은 겁 많고, 힘없고, 어찌 할 줄 모르는 우리를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성체성사를 통하여, 변화시키신다. 우리들의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를 당신의 몸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피가 되게 하신다. 생명이 없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는 분은 그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우리를 생명 있는 존재,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게 하신다.
마음의 평안이나, 신앙으로 말미암는 은총이나, 여러 가지 은사나 기쁨이나, 행복이나, 모두 하느님의 길, 예수의 길, 생명의 길을 걷다 보면, 얻게 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다 보면 얻게 되는 것들이다. 이제 더 이상 주객전도하지 말고, 예수를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분의 길을 우리 함께 손을 맞잡고, 한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하느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축복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