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어떤 근거를 댄다. 그 근거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 학자들의 이론, 성현의 말씀, 신문, 방송의 보도 등 다양하다. 자기 주장의 신빙성을 더욱 크게 하려면 아주 권위 있는 근거를 댈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칫 권위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의한 오류가 발생한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고심하지 않고, 어떤 전문가의 말이나 글을 허락 없이 빌리거나, 인용하거나 아예 숫제 베끼기까지 하면서, 마치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작태들이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논문 날조, 논문 베끼기, 등, 소위 공부한다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지도자축에 속한다는 이들도 이런 식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날로 먹으려 하는 것들도 있다.
많은 권위들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부모의 권위, 교사의 권위, 종교의 권위, 윤리의 권위, 법의 권위, 등등. 그런 권위들이 땅에 떨어진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분야에서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 부모로서 노력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고, 교사로서 노력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가 실추된 것이고, 종교 역시 마찬가지로, 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추된 것이다.
어릴 때에 어른들로부터 거짓말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들을 정도로 들어왔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라는 말들도 참 많이 들었을 것이다. 힘들더라도, 바른 길을 걸으라고.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 같고, 때로는 올바른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 길은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나와는 상관 없는 길로 단정지어 버리고, 비굴 모드로, 비겁 모드로 삶의 전환을 꾀하려는 이들도 적잖게 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게 된다.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고 싶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 길들여져 가면서 보통의 사람들은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자신을 당연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당당하게 살려면, 영웅 정도의 배짱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비빌 언덕이라도 든든한 게 있든지, 집에 쌓아둔 게 제법 많이 있든지 해야지, 쥐뿔도 없는 것이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웃기고 있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젊은 사람을 보고, 코웃음부터 치는 세상, 당당하게 사는 흉내라도 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 올바른 길, 그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세상은 그 길을 걸어가려는 영혼들을 죽이는 세상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표현을 빌면, 그 세상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고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핏대를 올리며, 생명의 주인에게 달려드는 더러운 영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현실을 따지고, 세상의 논리를 따지기 시작하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을 접을 때가 더 많고, 꺾을 때가 더 많다.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길, 바른 인격으로 이끄는 길.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데, 그 길을 걷기가 참으로 힘들고, 그 길에 한 걸음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주변의 시선들은 더욱 더 그 길을 걷는 것을 힘들게 할 것이고, 때로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 때문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겪을지도 모를 험난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서러움의 한숨과 넋두리와 눈물을 흘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는 더욱 빛난다. 더러운 영들조차도 복종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예수는 더욱 빛이 난다. 예수의 길을 따르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빛이 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어려운 길이고, 힘든 길이다. 그러나 그 길 한번 걸어보자. 백년도 못되는 인생 그거 하나 편하자고, 천년 만년 주님과 함께 하는 영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