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배고픔도 잊은 채, 예수를 따르는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군중들을 보면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에게 현실적인 말을 한다 : «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 틀린 말이 아니다. 제자들이 5천명도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 먹일 수가 있을까 ? 본당에서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어떤 직책을 부탁할 때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과 비슷한 말씀들을 하신다. 교회의 장상들에게 현실 참여’, ‘사회 참여에 대한 말씀을 드릴 때에도 대부분은 제자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신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말씀들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오 »라는 황당한 명령을 제자들에게 내리신다. 이 말에 제자들은 드디어 스승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 «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 » 늘 가난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2천만원에 상당하는 돈이 있을 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러니, 제자들의 볼멘소리 역시 타당한 말이고, 충분히 납득이 가고도 남는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볼멘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 빵이 몇 개나 있는지 » 물어 보셨다.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에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제자들에게서 나왔다고 보도하지만, 요한 복음은 이름 모를 한 아이가 안드레아에게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드렸다고 보도한다(요한 6,10참조)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백명씩 혹은 50명씩 떼를 지어 앉히게 한 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양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고, 이어서 그 빵과 물고기를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 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빵을 먹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내어놓았던 이름 모를 아이를 상상하노라면, 10년 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오버랩된다. 어쩌면 똑같아도 이리 똑같을까 ? 어른들 먼저 구해야 한다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에게 생명줄을 양보하고, 모자라는 구명 자켓마저도 친구에게 자기 것 입으라고 내어준 그 아이들이었다. 요한 복음서에는 그 아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분명히 예수께서는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온 아이를 축복하셨을 것이다. 그 아이를 빼닮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분명 예수께서는 축복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사람들은 말한다. 어줍잖은 동정심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더 가난하게 하고, 세상일을 더 망친다고. 잘난 사람들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말까지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얼마나 사람들을 도와 줘 보았느냐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나서 그런 말이라도 하느냐고 말이다. 원칙과 법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만 굴리면, 결코 사람을 알 수 없다. 사람은 만나야 하고,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해 보아야 조금씩 알아간다. 나누면, 나눌수록 없는 사람들은 더 달라고, 더 내놓으라고 말하는 뻔뻔함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나눔은 우리들에게 우리보다 더 못해 보이는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나눔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우리보다 더 못해 보이는 사람들이 결코 우리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도록 창조된 것이 인간이다. 

     
평생을 살아도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단원 고등학교 학생들은 사랑을 온몸으로, 목숨을 걸고 실천했다. 사랑이라는 진리를 몸소 보여 주었던 10년 전의 그 학생들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참으로 부끄럽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4 2025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05 2
83 2025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05 6
82 2025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05 11
» 2025년 1월 7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0
80 2025년 1월 8일 공현 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0
79 2025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3
78 2025년 1월 10일 공현 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0
77 2025년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3
76 ​​​​​​​2025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2
75 2025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14 6
74 2025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22 1
73 2025년 1월 17일 금요일 김명주 비비안나 장례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22 9
72 202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22 0
71 2025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22 3
70 2025년 1월 21일 화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1.22 2
69 2025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04 0
68 2025년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04 0
67 2025년 1월 24일 금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04 0
66 2025년 1월 26일 연중 제3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04 1
65 2025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5.02.04 0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