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같으신 그분
강은희 헬레나
부산가톨릭신학원 교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새삼 신기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라는 그리스도교. 이천 년 넘도록 이어진 신앙의 전통. 그 오랜 세월 동안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온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토록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그리스도라 불리는 이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신앙하며, 이분으로 인하여 절망의 어둠에서 일어나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세상의 계산기와는 맞지 않는 온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에 투신하기도 하며, 그렇게 이 신앙의 전통을 키워 왔다. 그분의 무엇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토록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주님 세례 축일을 맞으며, 그분의 세례 장면을 떠올려 본다. 어느 날 요르단 강으로 나와 군중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을 청년 예수. 나자렛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자라온 그의 모습을 어릴 적부터 보아온 동네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당시 이 서른 즈음의 청년의 존재를 누가 알고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 고향사람들은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여겼기에 딱히 특별할 것 없어야 하는 ‘옆집 아들’의 비범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비범함의 진수는 바로 ‘우리와 같으심’이었기에.
여느 인간들처럼 세상에 태어나, 동족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으신 그분은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재를 나르고 다듬느라 나무가시에 찔린 상처와 굳은살 투성이 손을 가진 생활인이었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여느 유다인 가정에서처럼, 부모와 함께 앉아 율법과 시편을 암송하였을 것이다.
세례와 함께 하느님 백성들 앞으로 나오신 그분은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를 고대하던 그 세상에서, 황궁의 옥좌가 아니라 범인들 속 낮은 곳에 자리하셨다. 우리와 같이 하셨던 분이셨기에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은 우리에게 와닿았고, 우리의 삶을 어루만졌다. 잔칫집에서는 함께 먹고 마시고,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함께 우셨던 분. 불의에는 분노하여 권력, 재력의 갑옷 하나 없이 맨몸 맨손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백성들을 감싸셨던 분. 진실됨과 선함의 지혜로 세상 힘의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하셨던 분. 인간이라면 응당 그러해야 하나, 그렇게 살지 않는 인간들 앞에서 가장 참된 인간의 거룩함을 몸소 보여주신 분. 그렇게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보여주셨고, 그분의 세례는 또한 우리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