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옛날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삼왕 내조 축일이라고도 불렀다. 동방교회에서는 오늘을 예수 탄생일로 여긴다. 성경은 동방박사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 베들레헴을 방문하고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 것 하나도 말해 주지 않는다. 무대 위의 배우가 자기의 배역이 끝나면 사라지듯, 그들은 잠시 나타났다가 성경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렇게 셋이기 때문이다. 동방박사의 이름이 Kaspar, Balthazar, Melchior라는 것은 기원 후 500 년경 발생한 전설에서 비롯된다.
동방 박사들이 메시아를 찾아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땅 위에서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하늘’의 일에도 깊은 관심과 갈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하늘에 이상한 별 하나를 발견했다. 별을 발견하고는 곧장 예물을 준비해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길은 가까운 길도, 쉬운 길도 아니었다. 사막을 지날 때 물이 없어 고통을 겪어야 했고, 골짜기를 지나갈 때 맹수와 도둑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었다.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다.
마침내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그리고 곧바로 궁궐로 간다. 유대인의 임금, 이스라엘의 왕은 당연히 예루살렘 궁궐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일반 상식에 의지해 궁궐로 향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헤로데를 만나게 된다. 음흉하기 짝이 없던 그 헤로데 말이다. 동방박사들의 순진함은 결국 베들레헴 근처의 두 살 남짓한 어린 아이들의 학살이라는 비극과 맞닿아 있다. 어쨌거나 동방박사들은 마침내 아기 예수를 알현한다. 그리고 난 후 그들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우리들 신앙인의 여정과 참 비슷하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해 오다가 가끔씩 엉뚱한 길로 빠질 때가 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인간의 상식과 자기의 판단을 의지할 때도 있다. 천 년도 당신의 눈에는 지나간 어제와 같다고 입으로는 시간 위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고백하지만, 조바심 때문에, 참지 못해서, 성령의 인도를 저버리고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경험에 의지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의지할 때도 있고, 심지어 주술이나 점술에 의지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경험이 많고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동방박사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보면서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라고, 삶에 대한 성찰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랑의 나눔, 정의의 실천, 평등과 평화의 실현,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며, 억압당하지 않고, 강요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 거짓과 중상모략에 흔들리지 않는 진리에 대한 추구, 인권의 보장, 생명 보호와 같은 주님의 일은 관심 밖이었고 세상일만 바라보고, 육신의 안일만을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재산을 많이 모을까’, ‘어떻게 하면 즐길까’, ‘어떻게 하면 출세를 할까’ ‘어떻게 하면, 덜 힘들까’ 등 이러한 것에만 관심을 두며 살지는 않았는가를 성찰해 보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요즈음의 시국을 정확히 보라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이라는 것이 직무정지된 대통령 지지 세력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의 대립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내란 수괴와 그 부역자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이라고만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윤석열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 간의 싸움도 아니라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의 대립은 참된 민주제를 갈망하는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과 반 민주 세력, 힘 센 나라에 빌붙어 살아가는 것이 콩고물 팥고물이 더 떨어지고, 자신들의 자리 보존과 자산 확장에 유리하다고 여기는 사대주의 세력, 폭력을 써서라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에 의해 나라가 다스려져야 한다고 믿는 독재와 군주제를 그리워하고 지지하는 세력간의 대립임을 정확히 보라 한다. 선과 악의 싸움이요, 빛과 어두움의 싸움이요, 아주 오래된 악의 뿌리를 걷어내어야 하는 일임을 명확히 알라 한다. 그리고 어두움은 빛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이 진리를 믿고 살라 한다.
오늘 우리들 모두는 이 초대를 받았다. 그 초대에 응하느냐, 응하지 않느냐는 우리들 각자에게 달려 있다.
나는 그 초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