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대림 제 
4주일 저녁미사 중 세례자를 위한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우리는 하느님을 거룩하시다고 고백한다. 미사 중에도 « 거룩하시도다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하느님을 찬양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의 것과 다르다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그분의 거룩함을 저 위에 있는 것, 높은 곳에 있는 것,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것,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 공포와 무서움을 주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그분의 거룩함은 그런 거룩함이 아니다. 

       
하느님은 다른 분이시다. 인간 군상들 가운데 어느 누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은 애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 자기가 선하지 못하다 해도 악한 사건을, 악한 사람을 보면 분노하고 단죄하는 게 인간이다. 또 많은 이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이전 그의 능력이나 덕행을 가지고 사람을 따지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선과 악, 크고 작음, 높고 낮음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선하고 높고 큰 것만을 추구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그가 선하든 악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으시고 인간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인간과 다른 점이고, 하느님을 거룩하다고 하는 까닭이다.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 이런 분이시라고 천명하셨다: « 내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오 ».

       
그런데, 그분이 다르다는 것은, 드높으신 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 신비로운 분, 모든 실존과 생명의 궁극기초이고 초월적인 하느님이시지만, 저 위에 홀로 계시지 않고 인간의 비극으로 내려오셔서 그 비극 속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게 하시는 데서 밝혀진다. « 나는 내 백성이 에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리라 ». 모세가 증언하는 거룩한 하느님은 속된 인간을 편드시는 하느님이셨다. 정의를 갈구하는 억울한 사람을 옹호하시고, 버림받은 고아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힘센 자들의 착취에서 보호하시고, 소외 받는 이들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포용하시는 분이셨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편드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을 당신의 생애를 통해, 특별히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두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신 분, 하느님의 성사,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세례를 받고, “믿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저 막연하게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아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리기 위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셔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아파하고 어루만지고, 위로하시며, 거기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하셨던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과거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훌륭한 삶을 살았던 예수가 실제로 존재하셨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동의하고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에는 예수의 선택, 길지 않은 지상에서의 삶 속에서 온몸을 내던지면서 한 선택,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서 완성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과 불의에 억눌려 고통받는 이들을 선택하신 예수의 선택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어가고 그분의 삶의 발자취와 궤적을 계승하고 확산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믿습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이 진실성이 있는 것이 된다. 

         오늘 보례예식을 받고 천주교 신자로 개종하는 차현정 카타리나 자매님, 
        그리고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세례를 받으면서,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3중 직무를 이어 받아 세상과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진실을 전하고 수호하는 시대의 예언자가 되고, 하느님과 인간, 하느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사제가 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봉사하는 왕 혹은 여왕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3중 직무를 수행하면 수행할수록 알게 된다. 그 삶이 바로 은총의 삶이고, 영광의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삶은 한 순간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몇 번의 노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은 전자제품을 구입할 때에나 쓰는 말이다. 믿음의 삶은 삶이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연속되는 결단의 삶이고 실천의 삶이다. 때로는 주위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약해질 수도 있고, 아예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교회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들 때문에 믿음의 삶이 방해를 받을 수도 있고, 그 구성원들의 불화와 불목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내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말이다.

       
세례를 통하여 저희들을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하시고, 저희들을 당신의 사람,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러 주시는 아빠, 아버지 하느님, 길이 영광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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